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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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납세의무는 병역의무와 함께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의 존립을 위해 지켜야 할 고전적인 의무다.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납세의무는 국가 재정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설정됐다. 세금정책에 따라 국민의 재산권 침해 정도가 결정된다. 그래서 현대 국가는 '세금국가'로 불리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5ㆍ9 조기 대선의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방안의 적절성 여부였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의무'라는 단어가 지니는 속성 때문인지, 납세의무라고 하면 마지못해 세금을 내야 한다는 느낌이 든다. 세무서 앞을 지나려면 괜스레 움츠려든다. 납세의무라는 표현이 풍기는 음습하고 칙칙한 냄새 때문이리라.


실제로 현행 세법이나 세무행정 시스템은 대부분 납세의무의 관점에서 짜여 있다. 이달 중 해야 하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위해 국세청 홈텍스에 접속해보시라. 화면 하나에 온갖 정보가 두서없이 널브러져 있다. 정작 납세자의 신고에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세금을 내는 납세자는 안중에도 없다. 스스로 알아서 신고하고 세금을 내라는 식이다.

세법을 펼쳐보는 순간 그동안 납부한 세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게 비단 필자뿐일까. 세법 용어도 너무 어렵다. 세무공무원과 세무 관련 업무 종사자들끼리만 사용하는 표현 투성이라서 불만이 쌓일 수밖에.


과연 세금에는 납세의무만 있고 납세권리는 없는가? 그렇지 않다. 복지수준 향상을 위해서라면 현재보다 세금을 기꺼이 더 부담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도 많다. 사실 세금으로 납부한 금액 중 절반 가까이가 복지라는 명목으로 납세자에게 돌아온다.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누릴 수만 있다면 국민 상당수는 자발적으로 세금 부담을 늘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재원 마련'구호가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던가. 납세를 의무 관점에서만 보았기 때문이다. 납세자 수준을 너무 얕본 결과다.


봉급생활자나 사업하는 사람이 돈 벌 때 세금을 더 내고 퇴직 후 국민연금을 보다 많이 받도록 국가 제도가 제대로 짜여 있다면, 세금을 더 적극적으로 납부하려 들 것이다. 사적 연금보험 가입자가 자발적으로 내는 연금보험료처럼 세금 부담도 거부감이 덜할 것이다.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차피 내야 할 세금을 의무가 아닌 권리의 일환으로 생각하게 하면 세금을 둘러싼 마찰이나 저항은 물론 세금징수 비용도 줄어든다. 선진국은 이런 생각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 납세권리를 납세의무보다 앞선 개념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가의 주인이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적어도 성실한 납세자는'갑(甲)'으로 대접받고, 국가권력이 '을(乙)'이어야 한다(물론 불성실 납세자에 대해서는 반대로 작동돼야 하겠지만). 현행 세법의 구성이나 세무행정 시스템 전반에 걸쳐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아울러 이상적이지만, 국가가 납세할 기회도 부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이 그런 사례다. 직업이 없어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직업을 쥐어 주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다. 그들도 납세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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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와 정부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세금 부담은 무거워진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가 저서 '사회계약론'에 적은 말이다. 납세 '의무'보다는 납세 '권리'가 국가와 국민 사이를 훨씬 가깝게 한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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