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자산운용 새 수장 오르는 허남권 CIO
이달 말 신영자산운용 새 수장에 오르는 허남권 CIO(최고투자책임자·54)는 펀드매니저에게 필요한 제1 자질로 통찰력, 즉 '시대를 앞서가는 눈'을 꼽았다. "펀드 운용을 잘하기 위해서는 동시간대 판단이 아닌 선행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펀드 운용만 22년차, 펀드베테랑인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11년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주)'이 주도하는 강세장에서 신영운용의 성적표는 운용사 중 꼴찌에 가까웠다. 투자자들의 원성이 커지면서 공식석상에서 사과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때 차화정이 고평가됐다고 생각하고, 관련주를 편입하지 않았어요. 우선주나 고배당주를 주로 들고 있었죠. 하지만 훗날 버블시대가 지나니 저평가주가 훌쩍 뛰었죠." 허 내정자는 당시 버블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설명했고, 돌아보면 그때의 선택이 현재의 신영운용을 만든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
강원도 영월 출신인 그는 자연과 함께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던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에 국내총생산(GDP)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20년 후 세상을 지배하게 될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이 때 자본시장에 베팅해야겠다고 결심, 신영증권 에 입사했다. '부자동네' 압구정에서 영업맨으로 증권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주식투자에 나섰고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도 잠시, 보유하던 주식이 폭락하며 아내에게 월급마저 못 갖다주는 신세가 됐다. 그는 인생을 뒤집겠다는 목표로 주식투자에 나섰지만, 자신의 '투자'가 '투기'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때부터 기업공부를 시작했다.
"펀드매니저 세계는 넘어지면 밟는 곳이다. 시험도 중간·기말이 있는데 매일 성적표(수익률)를 받아보니 마치 유리벽에 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는 그는 6개월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다. 발로 뛰며 투자기업을 찾아낸 결과 운용 첫해 오딧세이(마라톤 펀드의 전신)가 수익률 1등을 거두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그후 닷컴 버블, 금융위기 등 주식시장의 부침을 몸소 느끼며 성격도 변해갔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내 성격이 변해 다들 놀란다"는 그는 "중립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직업 특성상 성격도 차가워졌다"고 웃었다.
최근 코스피가 사상최고치를 눈 앞에 두면서 펀드 환매가 줄을 잇고 있다. 일각에서는 투자자들의 외면 속에 '공모펀드의 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허 내정자는 "역사를 보면 위기 때 세상이 바뀌고 기회가 있어요. 길게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역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죠." '펀드의 위기는 곧 기회'라는 그는 "10년 후 주식이 채권이나 부동산보다 좋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저금리 시대를 이겨내는 적정 수익률을 투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가져다주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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