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도 골든타임" 기타 장인들의 후배 사랑
박영호 콜트 대표, 휘문고 50년 후배들에 50대 기증
박영호 콜텍문화재단 이사장(왼쪽)이 지난달 31일 모교인 휘문고등학교에 자신이 운영하는 '콜트 기타' 50대를 기증하고 신동원 교장(오른쪽), 재학생과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휘문고 제공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익숙한 기타 반주와 노래가 울려 퍼지자 휘문고등학교 재학생들의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학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른다. 자신이 만든 '장미'를 연주하던 백순진(68) 씨. 노래가 막바지로 향하자 객석으로 마이크를 넘긴다. "다 같이요." 재학생과 교직원 100여명이 모인 시청각실이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백순진씨는 1970년대 포크송으로 인기를 얻은 남성 듀오 '4월과 5월'의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노래를 마친 그의 호명에 기타리스트 강근식씨(71)가 바통을 잇는다.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현란한 손놀림으로 '비틀스'의 미쉘(michelle)을 연주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기타 연주자들은 휘문고 교우 사이다. 이들이 50년 이상 차이나는 후배들 앞에서 노래와 연주를 한데는 콜텍문화재단 박영호 이사장(71)의 역할이 컸다. 박 이사장도 이 학교 57회(1965년) 졸업생. 국내 굴지의 기타 제조회사인 '콜트'의 대표다. 모교에 지난달 31일 기타 50대와 앰프 네 대를 기증했다. "재단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나 군대, 교도소 등에 기타를 보급했어요. 백순진 (함께하는음악저작인협회)이사장이 '후배들도 기타를 배울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권유합디다. 그 부분까지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참 좋은 아이디어 같더군요."
박 이사장이 기증한 기타는 보급용 마흔 대와 전문 연주용 열 대. 휘문고는 학업과 별개로 학생들에게 1인1기(器)를 권장한다. 1학년 재학생들의 음악 수업 때 기타를 활용할 계획이다. 신동원 휘문고 교장(61)은 "공부만으로 인성 교육을 전담하기 어렵다. 괴롭거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기타로 그 마음을 잘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1973년 서울 성수동에 100평짜리 공장을 임대해 기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피아노와 기타를 수입 판매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회사는 인도와 중국에 공장을 두고 매년 기타 100만대, 앰프 30만대를 생산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콜텍문화재단을 통해 문화 소외지역 주민을 위한 기타 공연과 마니아를 위한 경연 대회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악기 중의 최고는 기타"라고 했다. "2년 전에 케냐에 기타 50대를 보냈습니다. 그곳의 전문 연주자 다섯 명이 열 대씩 맡아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더라고요. 캐치프레이즈가 '기타 50대로 쉰 명의 인생을 바꾸자(fify guitars change fifty lives)'래요. 그 말이 참 와 닿습디다. 나는 40년 넘게 기타를 만들었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해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악기도 '골든타임'이 있어요. 학생들이 일찍 기타를 익히고 연주하면서 삶이 풍요로워졌으면 합니다."
'기타의 전설'도 거들었다. 송창식(70), 이장희(70), 김세환(69) 씨 등 포크 스타들의 음반에 세션으로 참가해 수많은 명연을 남긴 강근식씨는 "마음을 모으는데 음악만한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연주하기 쉽고, 정서를 표출하는데 가장 좋은 악기는 기타"라고 했다. 백순진씨는 "한 때 기타 연주가 저속하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음악은 다 같은 것"이라며 "더 많은 학생들이 기타를 배우고, 문화가 번성한 사회로 거듭나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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