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가 일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2월까지 수출이 16% 증가하면서 제조업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 서비스업 경기도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사드 설치 문제로 인한 중국의 보복이나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고려하면 수출 전망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이런 시기에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내수를 부양해볼만 하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 변동 없이 화폐액면 단위만 바꾸는 것이다. 이미 1953년과 1962년에 단행한 적이 있었다. 1953년은 ‘6.25 전쟁’에 따른 거액의 군사비 지출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나고 우리 통화의 대외가치가 폭락한 때였다. 1962년 리디노미네이션은 퇴장자금을 양성화하여 경제개발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세 번째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할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우선 경제규모가 커졌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614조 7000억원(추정치)으로 2차 화폐단위 변경을 했던 1962년(3658억원)보다 4414배나 커졌다. 우리나라 전체 금융자산이 2010년부터 1경(10,000,000,000,000,000)을 넘어섰고, 지난해 9월에는 1경 5,271조원에 이르렀다. 거래 단위의 편리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미 대부분 커피숍에서는 5000원에 해당하는 커피 값을 ‘5.0’으로 표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리 대외 위상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2016년 한국의 수출은 4954억 달러로 세계 8위인데, 1달러 당 1100원대의 환율은 너무 높다.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대만 통화는 2017년 2월 말 현재 미 달러당 30.7 대만 달러, 싱가포르 1.40 싱가포르 달러. 말레이시아 4.44 링깃 등으로 단위가 낮다. 중국 위안환율도 달러당 6.87 정도이다. 한국 원화 환율도 두 자릿수 이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내수를 부양해볼 수 있다. 화폐 단위가 변경되면 은행은 현금지급기는 물론 금융거래 관련 각종 소프트웨어를 대체해야 한다. 기업도 생산된 제품의 가격표를 바꿔야 한다. 이것이 관련 기업에게는 비용이겠지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기업에게는 수입이 된다. 2004년에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제지, 잉크, 컴퓨터, 자동판매기 교체 비용 등으로 약 5조원 정도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때보다 우리 경제 규모가 2배 정도 확대된 만큼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그 효과도 클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추정방법에 따라 GDP의 8~25%로 크게 다르다. 최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15년 기준으로 우리 지하경제가 GDP의 8%일 것으로 보수적으로 추정했는데, 그렇더라도 그 규모가 125조원에 이른다. 리디노미네이션의 경우 숨어있던 돈이 밖으로 나오면서 세금도 내야하고 소비지출로 이어질 수 있다.
그 과정에 돈이 돌게 된다. 2016년 말 기준으로 5만원 발행잔액이 76조원으로 화폐발행액 중 78%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5만원 권의 환수율은 낮다. 물론 2016년 5만원 권 환수율이 50%로 2014년의 26%보다 높아졌지만 아직도 절반에 불과하다. 우리 통화승수(=M2/본원통화)가 지난 해 12월 17배였는데, 2008년 26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통화승수가 이처럼 급락한 것은 가계의 현금통화 보유비율이 크게 늘어난 데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폐단위가 변경되면 단기일 수도 있지만, 일단 돈이 돌게 된다.
화폐단위 변경의 경우 일시적으로 각종 자산 가격이 오를 수 있다. 상대 가격의 변화는 없지만 절대 가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2,000,000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화폐단위가 100분의 1로 변경되면 이 회사 주가는 20,000원이 된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로 우선은 싸 보일 것이다. 자산 가격의 상승은 소비심리 개선에도 기여할 것이다.
머지않아 새 정부가 들어설 전망이다. 정책의 우선 과제로 리디니노미네이션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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