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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있는풍경] 88세 여고생 "배움에 정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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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학창시절 보내
배움 恨 남아… 5세 공부 다시 시작
반 학생들에게 '왕언니'로 통해… "대학 진학도 하고 싶어"

김순실씨

김순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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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잖아요. 하루하루 새로운 걸 배워가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해요."

2일 일성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88세의 김순실 학생의 말이다. 지난달 24일 일성여자중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이날부터 '여고생'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1930년생인 김씨는 일제강점기에 학창시절을 보냈고 6·25 전쟁 직후 남편과 사별했다. 두 아들의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던 중 서울시청의 여행가이드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어릴 적 '순실이'가 아닌 '도모짱'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일본어에 익숙했고 자신있었지만 역사 시험이 문제였다.

가이드 자리를 놓친 김씨의 마음에는 공부에 대한 갈망이 싹텄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삯바느질, 간병인, 호텔 청소 등 가리지 않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 생활이 안정되자 어릴 적 꿈이 다시 떠올랐다. 김씨는 "학교에서 역사 교육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한 6ㆍ25참전군인 미망인 모임에서 일성여자중고등학교를 알게 됐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여러 개인 사정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다. 지난 1952년 야학으로 시작한 이래 누적 졸업생이 5만4000여명에 달한다.
김씨는 지난 2013년 중학교 과정에 입학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평생의 꿈이었기에 어려움도 즐거웠다. 가장 재밌는 과목은 사회와 역사다. 그는 "역사와 사회를 배우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수 있었고, 지난 한국 사회의 아픔을 배웠다"고 말했다.

영어도 두렵지 않다. 지하철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스스럼없이 "플리즈 싯다운 히어(여기 앉으세요·please sit down here)"를 건넨다. 김씨는 "처음엔 두렵고 망설여졌지만 이제는 배운 내용을 써먹는 일이 무척 재밌다"며 "단어만 좀 더 잘 외워졌으면 좋겠다. 요즘은 통 암기가 잘 안 된다"며 웃어보였다.

학급 생활도 김씨에겐 큰 즐거움이다. 최고령인 김 씨는 반에서 '왕언니'로 통한다. 그는 "한참 어린 반 친구들과 서로 소통하며 챙겨주니 하루하루 즐겁고 젊어지는 기분"이라며 "이제는 오히려 내 또래와는 대화가 잘 안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씨의 목표는 대학 진학. 고령이지만 안경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시력도 좋다. 그는 "요즘 시대에 88세는 아직 청춘"이라며 "그래도 이 나이에 대학을 간다면 놀라운 일일 테고, 나는 그 놀라운 일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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