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세게 상복없는 별, '아카데미 징크스' 있는 이분들
작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못지 않은 역대 비운의 영화인은 누구?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케이시 애플렉은 과거 여성 스태프 성추행 논란과 강력한 라이벌인 덴젤 워싱턴의 위협을 딛고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나 그 분위기는 다소 심심했다. 반면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수상 여부였다.
할리우드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작품성과 흥행력 양면의 성공을 거머쥔 그였지만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던 탓에 ‘오스카를 못 받는 디캐프리오’ 패러디가 수년간 유행했을 정도. 그런 그가 지난해 ‘레버넌트’를 통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자 시상식 생방송 분당 시청률이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졌으며, 그가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에 대한 수상 소감을 남긴 뒤 참석한 애프터 파티까지 손에서 트로피를 놓지 않은 광경이 포착되자 드디어 한을 풀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고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1년 전 소원을 이룬 그와 달리 그간 아카데미의 발자취 속, 좌절을 거듭한 과거 할리우드 스타들의 눈물은 오늘까지 LA에 흐르고 있다.
7전 8기 마틴 스코시즈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감독으로서의 빠른 성공이 그에게 독이었을까, ‘뉴욕뉴욕’ 이후 한차례 부침을 겪은 그는 실존인물 복서 제이크 라모타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레이징불’로 화려한 복귀를 선언했다. 환상의 콤비로 호흡을 맞춘 로버트 드 니로가 이듬해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감독상은 마티가 아닌 로버트 레드퍼드에게 돌아갔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거쳐 ‘좋은 친구들’ 땐 ‘늑대와 춤을’의 케빈 코스트너에게 밀려 아쉬움을 자아냈고, 이후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등 명작을 들고 찾았음에도 번번히 고배를 마셨던 그는 2007년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로 기대도 안 했던 감독상을 수상하며 7전 8기의 기록을 써 내렸지만 일각에서는 ‘대놓고 주는 위로상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후 2014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또 한 번 설욕을 기대했으나 행운은 한 번에 그쳤고, 현재 최근작 ‘사일런트’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절망 속 물음에 응답을 얻은 감독이 새 영화를 통해 어떤 극한의 상황 속 ‘믿음’이란 주제를 그려낼지를 두고 기대를 모으고 있다.
▲ 1968년 4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히치콕 감독의 수상소감
영상 = OSCARS 제공
위로의 공로상에 단답으로 응수한 앨프리드 히치콕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은 작품 못지않게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통해 스타 감독으로 유명세를 치렀으나 유독 아카데미에서만큼은 그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었다. ‘레베카’와 ‘구명보트’에서 고배를 마셨을 때까지만 해도 순간의 불행이라 치부할 수 있었지만, ‘이창’과 ‘싸이코’로 노미네이트 됐을 땐 각각 ‘워터프론트’와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 밀려 빈손으로 돌아가야했다. 이후 1968년 아카데미는 거장감독에 대한 예우 차원의 공로상 ‘어빙 G. 솔버그’ 상을 그에게 수여했는데,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무대로 걸어나온 그의 소감은 “Thanks” 한 마디였다. 잠시 웅얼대다 이내 미련 없이 돌아서 퇴장하는 그의 발걸음엔 지난 다섯 번의 고배에 따른 분노가 고스란히 묻어나 관객들은 씁쓸한 웃음과 위로의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노장 선배에 예의를 표했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마거릿 대처 수상으로 열연을 펼친 메릴 스트립은 84회 아카데미에서 또 한 번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사진 = 영화 '철의 여인'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상도 받아야 는다, 아카데미의 여왕 메릴 스트립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다수의 예상대로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에게 돌아갔지만, 함께 후보에 오른 인물 중엔 진정한 아카데미의 여왕 메릴 스트립이 자리하고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연기력은 그녀에게 ‘Acting machine’이란 별칭을 선사했고, 개인 통산 아카데미 20회 노미네이션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는데, 단지 후보 지명뿐만 아니라 시대의 명작으로 적재적소의 순간에 3회나 수상한 그녀의 업적은 전무후무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20회 노미네이션에 3회 수상이면 불명예가 아니냐 하겠지만, 그녀가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의 면면을 살펴본다면 그 성과가 얼마나 컸나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만 남을 것이다. ‘디어 헌터’로 첫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그녀는 이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중산층 가정의 아내 역을 실감 나게 묘사해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고, 이후 홀로코스트의 참상 속 끔찍한 선택의 순간을 묻고 산 여인 소피로 분한 ‘소피의 선택’으로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이후 꾸준히 후보 지명을 통해 아카데미와 인연을 이어간 그녀는 2012년 ‘철의 여인’으로 또 한 번 여우주연상을 차지해 배우로서 큰 성과를 남겼다. 올해 아카데미에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에서 공로상을 받은 그녀는 도널드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소감을 남겨 올해 아카데미를 물들인 ‘파란리본’의 선구자 역할을 해내며 ‘행동하는 여배우’로 당대 여배우들의 귀감이 됐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남녀 조연상과 작품상 모두 흑인 배우, 감독에게 돌아가며 ‘백인들의 잔치’라는 비난을 의식한 듯 균형감 있는 수상리스트를 보여줬다. 수상 소감과 진행자들의 발언을 통해 반이민 정책을 강경하게 펼치고 있는 트럼프에 직격탄을 날린 할리우드의 물결은 새삼 지난해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충무로의 어두운 면과 대조를 이루며 일견 씁쓸함을 남겼지만, 정책과 독선으로도 강제할 수 없는 예술의 자유와 영화인의 행동을 보여준 의미 있는 행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