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림체로 내리던 비 그치고
햇살이 이토록 고운 걸 보니
가깝고도 먼 거기서는 잘 지내는지
내 숨소리와 체온을 아직도 기억하는지
집 밖은 푸른 절벽
손닿지 않는 외진 곳
까치발로 올려다보는데
문패 한 번 달지 못한 까막눈의 늙은 집
맨발의 달을 꿀꺽 삼킨다
멀어져 간 너의 까치걸음
혼자 먹는 밥그릇에 소복한데
두근두근 숨 쉬는 저 집,
하늘의 허파
 

[오후 한詩] 까치집 /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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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올려다봅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치집 하나 있어 자꾸 올려다봅니다. 새순이 돋을 때도 올려다보고, 소나기 속을 이파리들이 은어처럼 헤엄치는 저녁에도 올려다봅니다. 펄펄 눈이 내리는 겨울 한낮에도 문득 올려다봅니다. 몇 해가 지났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몇 해 내내 실은 같은 날이고 새날입니다. 어제이고 오늘이고 내일일지도 모를 하루마다 다만 까치집 하나 있어 자꾸 올려다봅니다. 행여나 까치가 울까 싶어 올려다봅니다. "가깝고도 먼 거기서는 잘 지내"시는지요. 어쩌면 지금 당장 당신이 올까 싶어 부산히 올려다봅니다. 그때마다 "두근두근 숨 쉬는 저 집". 그래요, 저 집은 "하늘의 허파"입니다. 하늘에다 매달아 놓은 제 감출 수 없는 숨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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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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