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건물 화장실에서 23세의 젊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일이 있은 후 여성혐오 논란과 함께 각계각층에서 반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200여일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이 부족한 양성평등에 신음하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12월 '가임기 여성 출산지도'를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243개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출산통계와 지원정책을 쉽게 보여준다는 취지를 담았지만 '여성을 가축 취급한다'는 지적과 함께 논란에 휩싸였다. 직장인 여성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현실적인 상황은 무시한 채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로만 인식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가 남성의 젠더감수성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오랫동안 남성 우월주의 사회가 지속됐기 때문에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감수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무뎌졌다는 의미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 젠더감수성은 처음부터 발달될 환경이 아니었고 발달시킬 필요도 없었다"며 "시민사회에서는 조금씩 (성평등에)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지만 정치권이나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들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전히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된 사회 약자에 대한 감수성에 비해, 유력 정치인들의 발언이나 매체 등을 통해 비춰지는 우리나라의 의식수준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과거에는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여성혐오 발언 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하는 경우는 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예컨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전국에서 3만5000여개의 추모 포스트잇이 모였고, 행자부의 출산지도 역시 온라인을 통한 비판이 봇물 쳐 하루 만에 중단됐다.
송 사무처장은 "2000년대에 태어나 2016년에 10대 후반을 보낸 사람이 맞는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과) 확실히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도 성평등이라는 것을 주요한 국정의 기조로 가져와야 변화가 더 크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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