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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아바나, 10명의 美대통령에 맞서

최종수정 2016.12.19 21:53 기사입력 2016.1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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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혁명의 길&장례의 길③]쿠바의 60년 이끈 빅맨, 그 궤적을 찾아서

▲카스트로를 추모하는 한 시민. (EPA=연합뉴스)

▲카스트로를 추모하는 한 시민.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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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의 성공과 피델 카스트로의 아바나 입성은 아메리카 대륙을 놀라게 했다. 쿠바는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지만 미국과 169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아바나에서 미국 대통령 10명과 맞섰다. 미국의 봉쇄로 경제는 어려웠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는 1960년 혁명광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아바나 선언'을 발표했고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1962년 발표된 2차 아바나 선언에서는 남아메리카에서의 미국의 침략 행위를 탄핵하고 전 대륙의 해방을 요구했다.

훗날 카스트로는 아바나 선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선언은 수백만 대중이 혁명광장에서 시위하는 도중에 나온 것이다. 이 선언을 통해 우리는 미국이 꾸민 음모와 맞섰다. 미국이 모든 남아메리카 국가들로 하여금 쿠바와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선언에서 헌법에 근거해 평화적인 시민 투쟁을 할 수 있다면 무장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1차 아바나 선언은 "우리는 준비됐다. 쿠바는 실패하지 않는다. 쿠바는 오늘 여기서 남아메리카와 전 세계 앞에 쿠바의 역사적이고 변치 않을 혁명을 천명한다. 조국,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이 선언은 쿠바 내 미국 소유의 정유 시설, 제당공장 등을 국유화한 이후에 나왔다. 이듬해 미국은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대사관을 폐쇄했다.

1962년 카스트로는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에 따른 미국과의 갈등으로 전쟁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핵전쟁으로도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협상으로 위기는 해소됐지만 카스트로는 당시 침략에 맞서 전쟁도 불사할 각오였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동원령을 내렸다. 마지막 피 한 방을 까지 흘려가며 조국의 땅과 혁명을 지키려는 27만여 명의 무장병력이 모였다. 나는 10월23일 TV 방송을 통해 미국의 침략을 비난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쿠바의 외교관계는 지난해 정상화가 선언됐고 그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 회동도 이뤄졌다. 그 역시 이 과정을 지켜봤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지난 4월 그는 아바나에서 열린 공산당 전당대회 폐회식에서 "나는 곧 90살이 된다. 곧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며 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며 죽음을 암시했다. 그는 두 번의 아바나 선언에서 "조국,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그가 그토록 중하게 여겼던 조국 쿠바는 그의 죽음에 어떻게 답할까.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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