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혁명의 길&장례의 길②]쿠바의 60년 이끈 빅맨, 그 궤적을 찾아서
피델 카스트로의 게릴라전, 쿠바혁명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다. 체가 이끄는 부대가 수도 아바나 동쪽 290km 지점에 있는 산타클라라를 점령한 이튿날 혁명군은 쿠바를 관통해 아바나에 입성할 수 있었다.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출발해 수도 아바나로 향하는 카스트로의 부대가 지나야 하는 곳이 바로 산타클라라였다.
카스트로가 몬카다 병영을 습격할 때도 그는 아바나에서 출발해 산타클라라를 지나갔다. 그는 당시 새벽에 아바나를 출발해 1000km를 달려 산티아고데쿠바에 갔는데 산타클라라에 들렀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훗날 언론인 이냐시오 라모네와의 인터뷰에서 몬카다 병영 습격 날을 회고하면 "지정된 시간에 아바나를 나왔다. 그리고 산타클라라를 들렀다. 그곳에서 안경을 샀다. 약간의 근시가 있었다"고 했다. 아바나에서 산티아고데쿠바로, 혹은 산티아고데쿠바에서 아바나로 향하는 여정의 중간에 꼭 산타클라라가 있다는 얘기다.
체는 산타클라라에서 바티스타 군대의 무기가 실린 열차를 접수했고 이날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혁명군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카스트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체는 산타클라라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서를 점령했는데 그때 무장열차가 끼어들었다. 그들은 철길을 떼어냈고, 기차는 후진하며 탈선했다. 그리고 그들은 열차에 실린 무기들을 모두 접수했다"라고 말했다.
혁명의 주역이었던 체는 쿠바에서 국립은행 총재, 산업장관 등을 역임했다. 카스트로에 이어 2인자였다. 하지만 그는 권력 안에 머물지 않았고 1965년 아프리카 콩고로 가 다시 혁명에 뛰어들었다. 1년 뒤에는 볼리비아에 잠입했다가 1967년 체포돼 처형됐다.
체의 죽음이 확인되자 카스트로는 애도 연설을 하며 "우리의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라고 묻고는 "우리는 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도 체가 남긴 것에 대해 "가장 위대한 것은 도덕적 가치와 양심이다. 체는 가장 고귀한 인간적 가치를 상징한다"고 했다.
1997년 발견돼 32년 만에 쿠바로 돌아온 체의 유해는 아바나에서 그의 전적지 산타클라라로 옮겨졌고 그 장면은 전국에 TV로 생중계 됐다. 체는 혁명 당시 산타클라라에서 아바나로 입성하던 길을 거슬러 가 영면했다. 19년이 지난 지금 카스트로도 그 길을 따라 간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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