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의 높은 시민의식이었다. 약자를 배려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해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에게 안전하게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주는 모습, 주위에 있는 어린 아이에게 각별히 신경을 쓰며 보호막을 쳐주는 모습, 지하철역 환풍 시설 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위험하다며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잡아주는 모습. 거리에서 처음 만난 사이지만 마치 오랜 친구처럼, 동네 이웃사촌인 것처럼 챙겨주는 모습이었다. 집회가 끝난 후 시민은 폴리스라인에 서 있던 의경을 포옹하기도 했다.
집회 횟수가 거듭될수록 깃발이 다양해졌는데 그 내용을 보면 역시 신세대답다는 감탄이 나온다. ‘독거총각 결혼추진위원회’ ‘문과생존 원정대’ 등은 우리 시대 청년들의 어려움을 유머로 승화시킨 깃발이다. ‘얼룩말 연구회’ ‘장수풍뎅이연구회’ ‘범야옹연대’는 심각한 상황을 살짝 비틀어 가볍게 터치하는 신세대의 감성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최근 인기를 모으는 게임 ‘오버워치 심해유저연합회’라는 깃발도 있다. ‘무한상사 노동조합’ ‘안남시민연대’ 등은 TV 인기예능 프로그램 또는 영화와 연관이 있다. 기발하고 위트 넘치는 이 깃발들은 ‘민주노총’ ‘서울대교수협의회’ ‘연세대민주동우회’ 등의 진지한 깃발과 함께 광장을 새로운 느낌으로 수놓고 있었다.
촛불 집회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퇴진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정치, 사회, 경제 분야의 개혁을 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양희은씨와 함께 상록수와 아침이슬을 부르는 장면, 1분 소등, 그리고 어둠 속에서 다시 영롱하게 빛나는 촛불 파도를 보면서 나는 ‘공동체 의식’이 회복될 가능성을 보았다.
이은형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