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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그 땐 '노무현 탓', 지금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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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금융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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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이러려고 영어 학원에 들어갔나." 영어 숙제를 하란 말에 10살 아들이 툭 내뱉은 말이다. 포켓몬스터 만화 밖에 보지 않는 아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신기했다. "'이러려고'는 어디서 들었냐"고 되물었더니 "요즘 학교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인데, 모르냐"며 되레 놀라는 눈치다. 그러면서 요즘 말로 '하태핫태'라며 부연 설명도 곁든다. 정치 뉴스는 전혀 보지 않는 아이 입에서 나올 정도니, 올해의 최대 유행어가 될 듯하다.

아들의 핫한 유행 놀이에 문득 10년 전 유행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댓글놀이가 떠올랐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 놀이는 2006년 5·31 지방선거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졌다. 정치·사회문제는 기본이었고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패배 소식과 국내외 연예인의 스캔들 기사에까지 모두 '노무현 탓'이란 댓글이 달렸다. 내용이 뭐가 됐든 '이 같은 때 대통령은 뭘 하고 있냐'며 책임을 추궁하는 식이었다.
그래도 지금보단 10년 전 유행어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 땐 탓을 하며 책임을 돌릴 곳이라도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 지금 유행하는 '내가 이러려고…' 문구엔 책임자가 없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없다. 자신의 마음이 괴롭다는 것만 표현돼 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두 번째 대국민 사과에서 "무엇으로도 국민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했을 때 쉽게 공감하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국민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 왔는데…"라고 한 대통령의 말은 마치 '나도 힘들다'란 의미로 들렸다.

우리 사회에 헬조선이란 섬뜩한 신조어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국민들은 미래를 위한 준비에 곱절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적법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최소한의 믿음이 있어서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믿는 대한민국에선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는 박근혜 정권의 권력비리 문제와 함께 대한민국 사회에선 공정하게 평가 받을 수 있단 믿음마저 산산조각 냈다. 가뜩이나 최순실 사태 후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 대선의 후폭풍까지 몰려오기 시작했다. '퍼펙트 스톰'(여러 악재가 모여 경제가 대혼란에 빠지는 현상)이 덮쳐올 태세다. 더는 미룰 수 없다. 대통령이 먼저 책임 있는 자세로 최순실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일명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국정 농단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이러려고가 아닌 대통령 탓이라며 책임을 추궁할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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