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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칼럼] “나도 오늘 광화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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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광화문 가요.... 촛불 행진 하러.....!”
오십대 초반의 통닭집 사장 박씨가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장사가 되지 않아 영 심드렁해 있던 참이었다. 하나 있는 아들놈도 졸업 후 취직이 되지 않아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도무지 재미도 없고, 풀리는 것도 없는 요즘 세월이었다.

그러던 차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다고 평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어마어마한 드라마가 이 백주대낮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터졌다. 평생은 고사하고 단군 이래, 이조 오백년을 통틀어도 없을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대통령부터 시작해 가히 슈퍼스타급이다. 처음엔 말 타는 딸과 그 엄마로 시작된 드라마는 하루가 멀다않고 손에 땀을 뒤게 하는 막장 드라마로 이어져 갔다. 속속들이 드러나는 그들의 행적 또한 자해 공갈단이나 조폭 양아치들도 흉내 내기 어려운, 파렴치의 극단이다. 대통령 연설문 고쳐 쓰는 게 취미라는 어느 여인은 청와대를 안방처럼 드나들며 비서관과 장관, 차관들을 제 집 머슴처럼 부린다. (작가인 나도 그런 취미활동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국내최고의 명문 여대 총장도 나오고, 굴지의 재벌기업도 등장한다. 그런 사이 수십 억, 수백 억 하는 돈들이 그냥 왔다갔다 한다. 수천 억 되는 국가 예산도 움직인다. 말하자면 양산박의 도둑떼들 마냥 대통령을 중심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그들 손 안의 공깃돌처럼 희롱했던 것이다. 그런 걸 보느라 며칠간 텔레비전에 코를 박고 살던 박씨는 연방 “저런, 저런. 제미랄. 아니, 저럴 수가....?”를 연발하더니 기어코 오늘 서울 광화문의 촛불 행진에 가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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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과연 개돼지일까? 그렇다.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거짓말쟁이며, 위선자이고, 위험을 멀리하고, 이익을 탐하는’존재라고 했다. 성악설을 대변하는 유명한 계몽기의 철학자 홉스는 인간이란 자연상태 그대로 두면 ‘만인과 만인의 싸움’을 벌이는 이리와 같은 존재라고 했다. 동양에서도 일찍이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이사(李斯)나 상앙(商?) 같은 법가 계통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무시무시한 법과 그에 따른 공포심을 이용하라고 권고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개돼지 같은 민중을 끌고 가기 위해선 적당한 당근과 적당한 채찍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더 교묘해졌다. 국정원과 같은 보이지 않는 기획자도 필요하고,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것처럼 대중의 눈과 귀를 헷갈리게 할 마술사, 즉 언론이라는 입도 필요하다. 영화에서도 바로 그 역할을 맡은 배우의 입에서, ‘민중은 개돼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유이다.
그들에게 있어 민중, 즉 서민 대중이란 하나의 하부 계층으로 통치의 대상이 되는 객체이다. 통치의 대상은 똑똑하거나 의견이 많아서는 안 된다. 민중이 똑똑하거나 각성하게 되면 통치는 매우 어려워진다.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 ‘총화단결’이라는 구호 아래 민주시민의 기본적 자질인 비판의식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외눈박이의 우민화 교육에 매진했던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때 각성된 사람,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불순분자’혹은 나아가 ‘좌경’, 혹은 더 나아가 ‘간첩’으로 매도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최근에 개봉했던 최승호 PD의 영화 <자백> 참조.)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민중은 결코 개돼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사건들은 무수히 일어났다. 로마 시대 노예들의 반란인 스팔타커스의 난이 그러했고, 농노제하 제정러시아의 농민봉기인 스텐카라친의 난이 그러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동학농민전쟁은 물론이고 4.19 혁명, 5.18 광주 민중항쟁, 6월 민주항쟁 등이 바로 그런 것의 대표적인 예들이다. 그런 순간, 인간은 더 이상 통치의 객체로서 개돼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인간’임을 보여주게 된다. 그나저나 나도 슬슬 박씨 따라 광화문에나 갔다 와야겠다. 오랜만에 개돼지가 아닌 촛불 아래 환히 노래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김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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