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 폭탄들대로라면 서울도 평양도 지도에서 사라질 판이다. 쥐뿔도 모르는 여당의원이 선제타격론을 거론하자 전시작전통제권도 없는 군을 관할하는 국방부관계자는 할 수 있다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대외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전제로 하는 핵무장론을 입에 담지 않나, 남의 손에 있는 전술핵 배치까지 거론하질 않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말이다.
그동안 남한이 미국을 파트너로 삼았다면 북한은 중국의 후원으로 버티고 있다. 남북한은 피를 본 사이이다. 그 과거를 청산하지도 못했다. 과거 부부관계였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는 서로 악담만 퍼부으면서 무슨 재결합을 하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싸우는 모습은 제3국들도 보고 있다. 대외관계의 이성과 품격을 잃고서야 어떻게 주도권을 쥘 수 있겠는가. 더도 덜도 말고 분단시절의 동서독만큼만 쿨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생각나는 소설이 있다.
남한의 산업화가 한참이던 1970년대 후반에 김승옥은 '서울의 달빛 0장'을 발표했다. 주인공은 여자의 눈동자에 반해 결혼을 할 정도의 순정남이다. 거기다 순결이념으로 무장돼 고리타분하다고 고개를 돌릴 일이 아닌 것이,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않던 1970년대다. 그 눈동자가 매력적인 여자는 배우이자, 으레 인공유산을 하는 창녀이다. 결혼 후에도 여전하던 그 생활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둘은 이혼을 한다. 산업사회의 홍등가를 상징하는, 물신화된 그녀와 독점욕을 다스리지 못하는 그의 결합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혼을 하면서 그에게는 ‘마누라가 아니라 애인이라면 얼마나 매력적인 여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는 물론 없으니 결말을 얘기할 필요는 없겠다.)
헤어지면서 애증의 사슬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커플들의 말로가 얼마나 초라하고 추해지는가. 나쁜 기억은 가라앉히고, 좋았던 것과 앞으로 좋을 것만 생각하자. 깨끗이 헤어지고 쿨하게 새로이 관계를 맺자.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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