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쉬운 해고 가능한 '해고연봉제'" 주장, 연쇄파업 불사…금융당국·은행, 비상대책 마련
금융권이 총파업에까지 이르게 된 최대 쟁점은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금융권 성과연봉제'다. 금융권 대부분이 적용하고 있는 호봉제(근무 연한에 따라 임금이 자동 상승하는 제도)를 성과평가를 바탕으로 한 연봉제로 바꾸자는 것이 핵심 골자다. 기존 관리자급 이하 은행원은 대부분 지점별 평가만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받는데, 여기에 개별 성과평가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를 '해고연봉제'라 규정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성과평가를 빌미로 사측으로하여금 '쉬운 해고'를 가능케 하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김문호 위원장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금융권 현장은 지금도 과당경쟁에 따른 전쟁터인데 이런 식의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불완전판매가 늘어 국민과 고객에 굉장한 피해가 가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노조는 역대 최대 규모의 총파업을 자신하며 집결 장소도 국내 최대 규모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정했다. 김 위원장은 "(금융사는) 전국 각지에 출장소를 포함해 만 개가 넘는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10만 노조원이 한 곳에 집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국내 최대 경기장에서 총파업을 실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총파업으로 은행업무 마비 등 국민이 겪을 불편에 송구스럽다"면서도 "정부와 사측이 성과연봉제를 강요하며 인권탄압 등 불법을 서슴지 않고 있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 투쟁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향후 정부와 사측과의 논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2ㆍ3차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덧붙였다.
은행들은 이에 대비해 각 행별로 조합원 이탈률에 따라 각 시나리오별 비상계획 마련에 나섰다. 비조합원과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직원을 중심으로 창구에 최대한 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그러나 과거 경험에 비춰봤을 때 실제 파업 참여율이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상황을 주시하고 (파업에) 대비하고 있다"면서도 "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나 관심도는 크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도 상황 점검에 나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1일 오전 9개 시중은행을 소집해 회의를 열고 은행 창구에서의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책을 점검했다. 금융감독원도 관련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회의에 참여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파업은 노조간부 위주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호응도가 낮을 것으로 보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면서도 "만전을 기하는 차원에서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금융권 파업은 참가율이 저조했다. 금융노조는 2000년 7월과 2014년 9월 관치금융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두 차례 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2014년 파업 때는 참가율이 10% 수준에 불과했다. 2014년 파업이 금융공기업 정상화, 낙하산 인사문제 등을 주요 화두로 내건 반면, 이번에는 시중 은행원들의 생계문제인 월급 체계와 직접 연관됐다는 점에서 파업 동력에서 차이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파업은 당일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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