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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삼치에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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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치회가 도마에 올랐다. 생선이 도마에 오르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겠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관용구로 '도마 위에 오르다'라고 할 때의 바로 그 도마다. 15년 만에 발생한 콜레라 환자 중 한 명이 삼치회를 먹은 다음날 증상을 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도마에 오른 삼치는 콜레라의 원인으로 몰려 눈 동그랗게 뜨고도 이런저런 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삼치도 회로 먹어?"라는 반응을 먼저 보인다. 삼치는 구워 먹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회라니, 그래서 콜레라균에 노출된 것 아닌가 간단하게 생각해버린다. 제 살 저며 날것으로 내놓은 삼치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본디 삼치는 선어회로 먹어온 생선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콜레라가 발생하지 않았던 15년 동안, 아니 그 이전부터 남해안 지역에서선 줄기차게 삼치를 회로 먹었다.

삼치회를 처음 먹어본 것은 7년 전인 2009년이다. 장소는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도항 인근의 식당. 나로도항은 삼치 파시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파시(波市)는 풍어기에 열리는 생선 시장을 말한다. 삼치가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고 해도 여수공항에서도 버스로 2시간 남짓 더 들어가야 하는 나로도항에 삼치회를 먹으러 간 것은 아니었다. 그해 8월19일 나로우주센터에선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가 예정돼 있었다.
발사 'D-1'인 18일 나로우주센터 프레스센터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은 시간은 오후 1시30분께였다. 잠시 후 TV 뉴스에서 속보가 전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사람들의 시선은 전라남도 고흥군의 나로도에서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난 한 사람의 일생으로 옮겨갔다. 발사를 연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결국 예정대로 진행됐고, 다음날 7분 56초를 남기고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나로호 발사는 중단됐다. 같은 달 25일 다시 발사를 추진했지만 이번엔 위성이 목표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해 8월 멀기도 멀었던 나로도에 이렇게 두 번 출장을 가면서 삼치회를 먹었다. 맛은 익숙하지 않았고 식감은 푸석했다. 고된 일정 탓이었는지, 나로호 실패 탓이었는지, 아니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마음이 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치회의 맛은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삼치회를 먹을 기회가 없었다.

다시 삼치회를 먹은 것은 6년이 지난 지난해 여수에서였다. 교동시장 인근에는 밤이면 포장마차들이 들어서는데 주로 해물, 묵은 김치, 삼겹살을 한데 구워먹는 '해물삼합'을 많이 먹는다. 늦은 밤이라 간단한 안주를 추천해달라고 하자 주인장은 삼치회를 권했다.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전문집도 아닌 포장마차에서 투박하게 썰어온 삼치회의 맛은 2009년 나로도의 그것과 달랐다. 부드럽고 고소하게 입에서 녹았다. 간장에 찍어 그냥 먹어도 좋았고 양념, 김 등을 함께 곁들여 먹으면 다른 요리처럼 느껴졌다. 삼치회 한 점에 소주 한잔을 마시며 생각했다. 과거 먹었던 것과 이 삼치회의 맛이 다른 게 아니라 음식을 먹는 순간을 둘러싸고 있는 정서들이 맛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 것 아닐까. 답답하기만 했던 출장길이 아닌, 하루하루 마음을 키워가는 평생의 친구와 함께 여수 밤바다 앞에서 먹는 삼치회의 맛은 그만큼 각별했다.
콜레라 얘기로 돌아오면, 관련 보도들 이후 남해안 지역 횟집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도 나라에 역병이 돌면 그 원인을 본인의 부덕에서 찾았다는데, 규명은 철저히 하되 애먼 삼치만 탓할 일은 아니지 않나 생각해본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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