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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메두사호의 조난

최종수정 2016.08.26 14:11 기사입력 2016.08.2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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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호의 조난

메두사호의 조난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의 조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쓴 생존기다. 생존자 두 명을 통해 밝혀진 사고의 진상은 당시 프랑스 사회는 물론 서양사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프랑스 화가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의 소재가 된 사건이다. 이후 메두사호는 ‘무능한 공권력에 의한 재난’의 대명사가 되었다. 세월호의 비극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핍절하게 다가오는 현실이기도 하다.

1816년 6월.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를 돌려받기 위해 아프리카 세네갈로 원정대를 파견했다. 원정대의 지휘함인 프리깃 메두사 호에는 총독을 포함한 승객과 선원 360여 명이 타고 있었다. 저자 H. 사비니와 A. 코레아르는 1816년 6월 당시 각각 군의관과 측량기사로 프랑스의 식민지 세네갈 원정대에 소속되어 메두사 호에 올랐다.
무능한 정부가 임명한 ‘낙하산 선장’ 쇼마레는 항해지침을 무시하고 다른 배들을 따돌리며 멋대로 속력을 올리다 서아프리카 모리타니 해안의 아르갱 모래톱에 좌초했다. 사고가 나자 선장과 총독, 상급 장교들을 포함한 ‘높은 사람들’은 구명정에 나눠 타고 무사히 육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힘없는 노동자와 군인, 선원 등 152명은 좌초한 범선의 돛대를 잘라 만든 뗏목에 올라야 했다.

조난 당시 사비니와 코레아르는 구명정을 마다하고 다른 152여명과 함께 뗏목에 올라 13일을 표류한 끝에 살아남았다. 같은 원정대 소속의 아르귀스 호가 폭 7m, 길이 20m의 이 엉성한 구조물을 발견했을 때에는 오직 열다섯 명의 조난자들만이 처참한 몰골로 살아남아 있었다. 건강을 먼저 회복한 사비니가 앞서 귀국하면서 이 책의 근간이 되는 ‘보고서’를 썼고, 오랜 병원생활을 겪은 코레아르가 합세하여 책을 완성했다. 이들의 증언을 통해 제리코가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알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한 일들을 망각 속에 묻어 버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는 물론 동료 시민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불행한 모험”을 기록했다. 또한 이 기록을 접한 테오도르 제리코는 진보적 사상을 가진 젊은 화가답게 이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데에 힘을 보태기로 작정하여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려 1819년 살롱에 출품했다.

<H 사비니·A 코레아르 지음/심홍 옮김/리에종/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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