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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본은 늙었지만 카메라는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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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제이슨 본'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컷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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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제이슨 본'에서 맷 데이먼은 예전 같지 않다. '본 얼티메이텀(2007년)'에서보다 몸놀림이 무겁다. 10년 가까이 흘렀다. 마흔여섯 살.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헐떡이지 않는 것이 다행일지 모른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61)은 현란한 카메라와 정교한 편집을 그대로 고수했다. 특유의 사실적인 액션 연출이다.

그는 거의 모든 샷을 쉐이키 캠(Shaky Cam)으로 찍었다.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흔들어 핸드헬드(카메라를 손으로 들어 찍는 기법)와 같은 효과를 냈다. 화면은 시종일관 요동친다. 웬만한 액션영화가 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줌렌즈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고나서 두통과 멀미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잖다. 하지만 그린그래스 감독의 연출은 겉멋에 취해있던 액션영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활기가 내내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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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슈프리머시(2004년)'가 공개되자 할리우드는 앞 다퉈 비슷한 작품을 내놓았다. 충무로도 '아저씨(2010년)'와 '용의자(2013년)'를 제작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본 시리즈를 답습하는 수준에 그쳤다.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여타 영화들은 스턴트맨이 하는 액션을 가리기 위해 카메라를 흔들었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생동감을 주면서 속도를 높이는데 중점을 뒀다. 여기에는 치밀한 계산과 노력이 깔려있다.

본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직 CIA 요원이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CIA에 쫓겨 항상 불안하다. 흔들리는 화면은 본의 심리를 그대로 대변한다. 그래서 롱 테이크 샷이 떨려도 흐름상 어색하지 않다. 더구나 본은 과묵하다. 제이슨 본에서도 대사는 스물다섯 문장이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줌렌즈를 이리저리 당기며 지루할 수 있는 흐름을 경계한다. CIA 작전지휘실 신에서 그는 본의 행방을 추적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흔들리는 화면으로 분주하게 표현한다.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는 단순한 컷에서도 중요한 폴더 쪽으로 줌렌즈를 당긴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대로 카메라의 방향을 돌린다. 단순히 분위기를 환기하거나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관객을 계속 긴장하게 한다.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컷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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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된 리듬은 교차 편집되는 본의 액션 신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모든 샷들은 사실적이다. 사투가 군중 속이나 일상적인 공간에서 이뤄진다. 이때 그린그래스 감독은 관객이 관심을 가질 만한 시선을 확보하는데 열을 올린다. 본 얼티메이텀의 모로코 탕헤르 신의 경우 4층짜리 건물 옥상을 내달리다 건너편 건물 창문으로 뛰어드는 본을 스턴트맨이 카메라를 들고 같이 뛰며 촬영하게 했다. 이어지는 데쉬(조이 안사)와의 격투 신은 다양한 컷을 과감하게 편집해 완성했다. 넘어지는 본과 촛대를 집어든 데쉬, 몸을 피하는 본, 바닥에 부딪히는 촛대, 가까스로 일어나 공격하는 본의 모습을 차례로 붙였는데, 재생시간은 3초밖에 되지 않는다.
뉴욕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 신도 다르지 않다. 충돌 장면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고 빠르게 편집했다. 특히 조수석에서 본을 촬영한 샷은 CIA요원의 차가 스크린으로 돌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줘 이후 많은 영화들이 인용했다. 제이슨 본에서는 특수기동대(SWAT)가 시위진압에 사용하는 군용 지프를 CIA 요원(뱅상 카셀)의 차로 설정했다. 그래서 추격 신이 무식하게 치고받는 격투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백미는 차량 수십 대를 밟고 지나가는 장면이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이 샷을 비중 있게 조명한다. 그는 격투 신에서도 동작이 크거나 화려하면 풀 샷으로 따로 잡는 경향이 있다. 제이슨 본에서 본이 런던 시가지를 빠져나가는 신이 대표적이다. 옥상에서 CIA 요원의 총격을 피해 아래로 몸을 날리는 모습을 위에서 넓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샷들은 격투 신처럼 조합했다. 추락하는 본의 모습을 밑에서 다시 조명하고 줄을 잡는 손과 안간힘을 쓰는 얼굴을 차례로 보여준다.

영화 '제이슨 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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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집요함은 관객에게 풍성한 샷의 향연으로 전달된다. 수많은 폭발 신으로 관객을 사로잡던 시대가 지났음을 알리기도 한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화려한 액션 장면을 더 많이 삽입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조금 더 틀면 데이먼의 무뎌진 액션을 교묘하게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그래픽의 힘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정공법을 택했다. 사실적인 액션이 주는 쾌감의 매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지난 10년 동안 이보다 영리한 첩보영화는 나오지 않았다. "다시는 출연하지 않겠다"던 데이먼이 마음을 돌린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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