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정치권과 정부에서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있다. 여론을 등에 업을 수만 있다면 진위 여부는 따지지 않고 목소리부터 높이는 정치권과 내야 할 목소리에는 침묵한 채 여론의 눈치만 살피는 정부부처의 행태가 뒤섞여 국정이 '복합골절'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국회의원이 예외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앞서 이 사안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강효상 새누리당이 김영란법의 미비점으로 지적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사안이다. 안 전 대표는 "정당한 입법 활동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의원 등도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기자회견까지 열고 "김영란법의 부정청탁 금지대상에 국회의원을 포함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비판이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의원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조항은 국회 심사과정에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이 김영란법을 처음 만들 때부터 포함되어 있었다. 김영란법 원안인 권익위원회 입법예고안 8조3항 4와 7에 국회의원은 부정청탁에서 예외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해당 조항이 김영란법에 처음부터 들어간 것은 국회의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 국민의 민원ㆍ고충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실제 김영란법 예외조항에 보면 청원법 등에 따라 권리침해의 구제ㆍ해결을 요구하는 경우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조항(5조2항1)이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억울하다고 민원 넣는 것은 부정청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같은 조항은 정부기관에 문서에 의해 제기된 민원에만 해당하는 보호규정이다. 따라서 일반 국민이 시민단체나 정치권을 찾아가 구두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았다거나 정책을 제안한 경우에는 5조2항1의 부정청탁 예외로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 청원법 등에 규정된 양식에 의한 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영란법은 별도로 5조2항3(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ㆍ기준의 제정ㆍ개정ㆍ폐지 또는 정책ㆍ사업ㆍ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하여 제안ㆍ건의하는 행위)을 둬서 일반국민이 정치권과 시민단체에 도움을 호소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국민이 고충·민원이 있다면 정부 뿐 아니라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찾을 수 있도록 보호하기 위한 법률인 셈이다. 즉 국회의원 특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조항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정치권이 해당 조항을 국회의원으로 특권으로 매도하면서 지난주 주간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무당층이 대폭 증가했다. 조사를 주관한 리얼미터 관계자는 "김영란법 국회의원 예외 논란이 거세지며 무당층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D

김 전 의원은 김영란법 주무부처인 권익위의 무책임함도 질타했다. 국회가 김영란법을 지난해 5월에 통과시켰는데 시행령 마련은 물론 관련 혼란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 제시 등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권익위는 지난해 8월까지 시행령을 만들어 입법예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어긴 뒤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10월까지 제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해를 넘겨가며 시행령을 만들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은 "마치 권익위가 헌재의 위헌 판결을 기다린 것만 같다"고 질타했다. 김영란법 시행령 준비 당시 권익위는 농수산 단체의 반발에 직면했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권익위가 국회 법 개정과 헌재 판결만 기다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세법개정도 마찬가지다. 더민주가 3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는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 방안이 빠졌다. 당초 더민주는 면세자 축소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었지만 최종 단계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 증세로 받아들여져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뺐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더민주는 "면세점 이하 소득자에 대한 소득공제ㆍ세액공제 조정 등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부와 협의 하에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만 밝혔다. 사실 이 문제는 야당 탓만 할 것은 아니다. 전체 근로소득자의 절반이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은 국민개세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줄곧 제기됐다.화두만 던지고 해법을 제시하자 않은 야당도 문제지만 조세저항이나 여론을 우려해 침묵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책임도 크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