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기자의 Defence]이천시대 맞은 특전사의 역사는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특전사는 6ㆍ25전쟁 당시 계급과 군번도 없이 조국을 위해 헌신한 '8240 유격부대(KLO)'에 근간을 둔 제1전투단(현 제1공수여단)이 창설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켈로부대는 1951년 미군이 창설한 미 극동사령부 산하 특수부대로 북한지역에 파견되는 유격작전부대와 첩보부대로 나뉘었으며, 부대원들이 모두 38선 이북 출신이다. 8240 유격부대는 6ㆍ25전쟁 당시 비정규군으로 북한 등 적진에 파견돼 첩보를 수집하거나 유격활동 등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자체 추산 3만명에 이르는 부대원 가운데 6000명이 전사했고 2000명은 행방불명 됐으며, 현재 남은 생존자는 2000∼3000명 가량 된다. 현재 특전사 예하에는 6개 여단과 2개 단급 부대가 있다.
특전사가 첫 파병에 나선 것은 1968년이다. 당시 정부의 파병방침에 따라 월남전에 241명의 특전장병들이 파병됐다. 이후 2002년 4월부터 10월까지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2004년과 2005년 이라크 자이툰부대, 2009년 레바논 동명부대의 핵심전력으로 편성돼 한국군의 우수성과 국위선양을 했다.
특전사에서 천리행군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1974년이다. 첫 천리행군에서 특전사는 한명의 낙오자도 없었다. 이밖에 한국군 최초로 공수교육, 낙하산 정비, 강하조장, 스키훈련, 산악훈련, 스쿠바 등 11개 분야 특수전을 이끌어 왔다.
특전사에는 영웅도 있다. 이원동 상사는 1966년 2월 4일 고공침투 훈련도중 먼저 수송기에서 뛰어내린 동료 부사관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추락하자 급하강해 공중에서 그의 낙하산을 펴주었다. 하지만 자신은 한강얼음판위로 추락해 순직했다. 특전사에서는 이원동 상사를 하늘의 꽃이라 부르고 있다.
특수전사령부는 44년간 마감하고 이천시대를 열게됐다. 특전사의 이전은 2005년 국가 균형발전 정책과 송파 신도시 개발의 하나로 결정됐다. 2011년 공사를 시작해 만 5년 만에 입주했다.
국방부가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 옛 특전사 부지 155만㎡(47만평)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양도하는 대신, LH가 경기도 이천시 일대 360만㎡(109만평) 부지에 병영시설과 주거ㆍ복지시설 163동, 훈련장 20개소를 지어 국방부에 기부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공사 완료에 따라 지난 2월부터 군인 가족이 먼저 이사를 했고, 6월부터 본격적인 부대 이동을 시작해 3공수여단은 6월 말, 사령부는 지난달 29일에 각각 이전했다.
장병과 가족 등 4000여 명이 넘는 인구가 이천으로 편입되어 연간 156억원의 경제효과를 낼 것으로 추정됐다. 즉 직접소비 효과 76억원, 지방세 납부세액 11억원, 생산유발효과 269억원, 중앙정부 교부세 증가액 15억원 등으로, 이는 이천시 총생산의 1.3%에 달하는 금액이다. 특전사는 이천시 주민과의 화합과 상생을 위해 종합운동장과 야구장을 주민에게 개방하고, 다음 달에는 국립발레단 공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준비 중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오를까 떨어질까 불안하다면…"주가 출렁여도 따박...
장경석 특수전사령관은 "특수전사령부가 이천으로 이전했지만, 국가가 필요로 하는 시간과 장소에 즉각 투입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면서 "완벽한 임무수행 능력과 태세를 항시 구비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활동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