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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낭만시대'의 춘천행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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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춘천행 기차, 흥겨운 기타 소리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얼굴은 다들 함박웃음이다. 유쾌한 청춘은 그렇게 '오늘의 행복'을 즐겼다.
 기차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불편함을 느낄 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았다. 춘천행 기차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 오전이 되면 서울 청량리역 시계탑 주변은 친구들과 'MT(Membership Training)'를 떠나려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청바지와 청재킷의 '청청패션'으로 패션 감각(?)을 뽐낸 이들부터 머리에 '무스'를 잔뜩 바르고 연신 손거울을 보는 이들까지 모습도 다양했다.

 그 시절 청춘은 각자의 '낭만 시대'를 살았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얘기지만, 술만 잘 마셔도 좋은 회사에 취업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높은 학점을 올리는 것보다 인생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 아니었을까.
 실제로 술자리 좋아하고, 선후배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은 취업에 유리했다. '전설의 주당'들이 대기업 샐러리맨으로 다시 나타나는 모습, 1997년 외환 위기를 맞기 이전에는 이상할 게 없는 장면이었다.
 삶이 평화롭던(?) 그 시절, MT는 하나의 문화였다. 금요일은 MT의 날과 다름없었다. 동기, 학과, 동아리 등 종류도 뭐가 그리 많은지 MT 기회는 차고 넘쳤다. 경기도 일영과 서울 우이동 계곡도 즐겨 찾았지만, 춘천행 기차와 함께하는 여행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 대성리, 강촌 등 북한강변에 기차가 설 때마다 청춘 남녀들이 내렸다.
 청춘 남녀가 함께하는 기차 여행, 로맨스 얘기가 빠질 수 없다. '평소 흠모하던 이성과 함께 좌석에 앉게 된다면….' 부푼 꿈을 꾸며 열차에 오르는 기분, 심장의 떨림을 가져오기 충분한 자극이었다. 대부분 '헛꿈'으로 끝나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것도 낭만시대의 에피소드 아니겠나.
 기차 통로를 오가는 '스낵카'에서 삶은 계란도 사 먹고, 맥주로 '낮술 삼매경'에 빠지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친구들과 잔뜩 수다를 떨기도 하고, 창밖 풍경에 탄성을 지르다 보면 목적지에 이르렀다. 춘천행 기차와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 그 친구들은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됐지만, 해맑게 웃던 그 시절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제 춘천행 기차는 과거의 얘기가 됐다. 더는 흥겨운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발랄한 표정의 젊은이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소음도 경험할 수 없다. 2010년 12월20일 춘천행 무궁화호 기차는 마지막 여행객을 태워 나른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청량리부터 춘천까지는 전철이 놓였다. 교통 환경은 편리해졌지만, 덕분에 잃은 것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젊음과 꿈과 사랑을 노래했던 그 공간, 춘천행 기차에 켜켜이 쌓여 있던 추억의 체취를 경험할 수 없게 됐다.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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