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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서울의 밤③]윤동주 시인이 숨 쉬는 인왕산 자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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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야경

인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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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권성회 기자]윤동주 시인의 절친한 후배이자 하숙집 룸메이트였던 정병욱 전 서울대학교 교수는 회고담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침 식사 전에는 누상동(하숙집이 누상동에 있었다) 뒷산인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을 했다. 세수는 골짜기 아무데서나 하고, 방으로 돌아와 청소를 하고 조반을 마친 다음에는 학교로 나갔다.”

윤동주가 매일 아침 찾던 곳. 산책을 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시상을 떠올렸던 곳. 그의 짧은 생애와 시 세계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윤동주 문학관과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위치한 곳. 북악산의 서쪽 창의문부터 시작되는 인왕산 자락길을 19일 저녁 찾았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올라가면 윤동주 문학관 정류장이 나온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띈 건 윤동주 문학관이 아니라 우뚝 솟아 있는 한 동상이었다.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알고 보니 1968년 1월21일 이른바 ‘김신조 사태’ 당시 순직한 경관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었다. 고 최 경무관은 사건 당시 남하하던 간첩들을 청와대 입구에서 막아서다 총격전 이후 순직했다. 그는 총상을 입고서도 “청와대를 사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한쪽에는 함께 순직했던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도 세워져 있다.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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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종수 경사 순직비

고 정종수 경사 순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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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수 경사 순직비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창의문이 보인다. 서울 사소문 중 하나로 북소문 혹은 노을이 많이 낀다고 해 자하문(紫霞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이곳은 1623년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도성으로 진입할 때 이용한 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낮 시간에는 문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창의문

창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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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창의문에서 내려와 길을 건너면 윤동주 문학관에 들어설 수 있다. 문학관에 입장하자마자 직원이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사진촬영은 금지합니다”고 알려온다. 문학관은 총 3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1전시실은 시인채로 윤동주의 생애,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일본 유학 시절, 그리고 죽음과 유고 시집 발간까지 시인의 삶을 9부분으로 나눠 전시한 것이 눈에 띈다. 시인이 생전에 기록했던 친필 시나 낙서도 관람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소재로 한 학생들의 시화도 재밌다.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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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시실은 열린 우물로, 윤동주 시 ‘자화상’에 나오는 고향의 ‘외딴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조성됐다. 본래 문학관은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었다. 가압장은 물살에 압력을 가해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인데, 윤동주의 시가 아름다운 자극을 준다는 의미에서 이곳을 활용하게 됐다.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해 우물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3전시실은 또 다른 물탱크를 이용해 윤동주 시인이 죽음을 맞이했던 후쿠오카 형무소를 간접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약 10분짜리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윤동주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캄캄하고 서늘한 전시실에서 영상을 보고 있으니, 시인이 느꼈던 고뇌와 아픔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

윤동주 문학관을 나와 안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청운문학도서관이 나온다. 지하1층에는 국내문학, 해외문학에 아동문학까지 고루 볼 수 있는 열람실이 시민들을 반긴다. 지상에는 독특하게 한옥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는 세미나 등이 이뤄지며 열람실로 이용할 수도 있다. 인왕산 자락길을 걷기 전에 독서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도 좋은 여행코스가 될 것이다.

청운문학도서관 지상 1층은 한옥으로 만들어졌다.

청운문학도서관 지상 1층은 한옥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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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위쪽으로 올라가면 오르막길이 하나 나오는데 이곳을 바로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 부른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라 적힌 바위 옆엔 시인의 대표작 ‘서시’가 적힌 거대한 시비가 있다. 이곳에선 서울 도심의 야경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스토리, 서울의 밤③]윤동주 시인이 숨 쉬는 인왕산 자락길 원본보기 아이콘

[스토리, 서울의 밤③]윤동주 시인이 숨 쉬는 인왕산 자락길 원본보기 아이콘

서 있는 곳의 높이가 그리 높진 않아서인지 도심의 풍경이 굉장히 멀리서 보이는 느낌이다. 시야를 살짝 가리는 나무들 때문에 건물들의 크기도 한층 더 작게 보인다.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건 컴컴한 서울 하늘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오롯이 빛을 내고 있는 둥근 보름달이다. 마침 19일은 음력 6월16일이었다. 내심 좋은 날에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야경.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보름달은 밝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야경.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보름달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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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인왕산에 온 김에 산책로를 따라 걷자고 생각했다. 안내지도를 보니 전망대라고 쓰여 있는 곳이 있어 그곳에서 야경을 한 번 더 감상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인왕산 자락길 건강산책로라고 이름 붙은 이 길은 총 2km 구간으로, 5개의 코스로 나눠져 있다. 전망대까지 가기 위해 5코스와 4코스를 걷기로 했다.

15분 정도 걸으니 4코스와 3코스 중간 지점인 전망대에 도착했다. ‘아, 여기다!’ 전망대 남쪽으로 펼쳐진 도심 야경을 바라보니 절로 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높은 지대, 탁 트인 전방, 정면으로는 남산 서울타워가 보이는 절경이었다.

인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와대(10시 방향)와 경복궁(3시 방향).

인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와대(10시 방향)와 경복궁(3시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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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과거의 궁궐인 경복궁과 현재의 궁궐인 청와대가 보인다. 경복궁은 전체가 보이지만 청와대는 파란 지붕만 얼핏 보인다. 과거는 알아도 현재는 모른다는 역설이 떠올랐다. 윤동주 시인이 과거 인왕산에 올라 경복궁과 조선총독부 건물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도 상상해봤다.

인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야경

인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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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가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산자락길을 내려오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윤동주 시인은 왜 매일 같이 인왕산을 올랐을까. 그곳에서 무엇을 봤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얕은 지성과 감성으로서는 차마 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권성회 기자 stre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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