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동과 금호동에 걸쳐 있는 응봉산은 해발 94m의 아담한 산이다. 응봉(鷹峰, 應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곳이 예부터 매사냥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하기 전에도 매를 놓아 사냥을 했던 곳이다. 태조 4년(1395년)에는 매사냥을 관장하는 기구인 ‘응방’을 지금의 응봉산 기슭에 설치하기도 했다. 태종과 세종도 이곳에 나와 매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매 응(鷹)자를 써서 응봉 혹은 매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는 응봉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명이 꽤 있는데, 대부분 매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본격적으로 응봉산 정상에 오르기 전에 또 다른 명소인 인공암벽장부터 찾았다. 등산로 중간에서 계단을 한참 내려가다 보면 암벽장이 나온다. 아직 햇볕의 열기가 남아 있는 한여름 저녁이었지만 암벽 등반을 즐기기 위해 찾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높이 15m로 도심 속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암벽장이다.
암벽 등반 경력 8년차 안상용(53)씨는 “암벽장이 산 속에 있다 보니 정말 자연에 있는 느낌이 든다”며 “다른 실외 암벽장과 달리 음지에 있어 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암벽 등반을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인도 중간에는 절벽 위에 조성해 놓은 ‘출렁다리’가 있다. 길이 약 10m 정도의 다리 2개가 있는데, 생각보다 많이 출렁여 스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물망이 설치돼 있지만 그래도 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북동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가까이로는 유유히 흐르는 중랑천과 응봉교 등을 볼 수 있고 멀리로는 용마산과 아차산 능선을 볼 수 있다. 퇴근시간이지라 중랑천을 끼고 동부간선도로를 타는 수많은 차량들의 불빛이 인상적이었다.
전망대에서 ‘응봉산 팔각정’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다시 계단을 오르면 곧 응봉산 정상이 나온다. 광장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팔각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정작 팔각정에 올라가서 야경을 즐기기는 어렵다. 군데군데 솟아 있는 나무가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팔각정에서 내려와 다시 정면을 바라보니 동에서 서로 흐르는 한강물이 한눈에 잡힌다. 빌딩, 한강다리, 수많은 차량들의 빛을 받아 넘실거리는 물결들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서울숲과 성수대교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강남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더 먼 곳을 바라보면 청계산, 관악산 등이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낸다.
응봉산 야경의 절정은 서쪽 가까이에 위치한 동호대교의 모습이다. 특히 상부 트러스(truss)의 붉은 빛과 하단 푸른 빛의 화려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푸른 빛이 강물에 비쳐 넓게 퍼지는 모습도 멋있다. 대교 양쪽으로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내달리는 차량들의 불빛도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든다. 친구와 함께 사진기를 들고 응봉산을 찾은 류성원(32)씨는 “응봉산 야경이 멋있다고 해 처음 왔다”며 “탁 트인 전경 속에서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응봉산의 여름은 뜨겁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골칫거리가 있거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늦은 저녁 응봉산에 올라가보자.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에는 더운 날씨에 땀이 금방 맺히겠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멋진 야경을 즐기는 순간만큼은 모든 피로가 사라질 것이다. 응봉산의 여름은 특별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응봉산의 봄도 매우 특별하다고 한다. 온 산이 노란 개나리꽃으로 뒤덮여 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매년 4월 초에 개나리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잘 기억해뒀다가 봄나들이 계획을 잡는 것도 좋을 것이다.
권성회 기자 stre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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