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포럼]두 번째 달

달은 예로부터 인류에게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었다. 낮과 양을 상징하는 태양에 대응하여 달은 밤과 음을 상징하였다. 많은 면에서 달이 태양과 거의 대등하게 대접을 받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달의 겉보기 크기가 태양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가 좀 더 일찍 지구에 등장했다면 어쩌면 태양보다 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서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달이 태양보다 더 크게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의 실제 크기는 태양의 약 4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달이 태양과 같은 크기로 보이는 이유는 마침 지금 우연히 달이 태양보다 지구에 400배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일 뿐이다. 달은 지구에서 매년 약 4cm씩 멀어지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이보다 더 크게 보였고 미래에는 더 작게 보일 것이다.

태양에 비해 아주 작긴 하지만 그래도 달은 위성치고는 꽤 큰 편이다.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 중에 달보다 더 큰 것도 있지만, 중심이 되는 행성과의 상대적인 크기를 비교해보면 달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크다. 그러다보니 지구는 달에 의해 꽤 많은 영향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밀물과 썰물이 주로 달 때문에 생기고, 지구의 자전축이 크게 변하지 않고 안정되어 있는 것도 달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달이 옛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 여성의 월경 주기가 달의 위상 변화 주기와 유사한 것은 그저 우연일 뿐이고, 보름달이 뜬다고 해서 사람이 늑대가 되거나 정신이 이상해지는 경우도 없다. 보름달이 밤을 밝혀주는 날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밤에 더 많은 활동을 했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더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났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이 오랫동안 인간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쳐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달과 관련된 신화나 전설은 무수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달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인공위성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지만, 달은 지구의 유일한 자연 위성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지구의 주위를 도는 또 하나의 자연 위성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지구의 두 번째 달이 발견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심이 일었지만, 이 천체를 발견한 나사에서는 이것을 ‘준위성(quasi-satellite)’라고 불렀다.

이 천체는 원래 태양의 주위를 도는 소행성이었는데 지구 중력의 영향으로 지구와 유사한 궤도로 태양 주위를 돌면서 속도의 변화 때문에 지구의 주위를 돌게 된 것이다. 지구의 주위를 도는 것은 맞지만 지구의 중력에 묶여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성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고 준위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달은 지구의 중력에 묶여있기 때문에 궤도가 매우 안정적이어서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거의 영원히 지구의 위성으로 남아있을 테지만, 이번에 발견된 준위성은 지구보다 태양 중력의 영향을 더 크게 받기 때문에 궤도가 그 정도로 안정적이지는 않다. 과학자들이 계산해본 결과 이 준위성은 약 100년 전부터 지구 주위를 돌기 시작했고 앞으로 몇 백 년 더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크기는 40~100m 정도로 국제우주정거장보다 작거나 비슷한 정도이고, 달보다 최소한 38배 이상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작은 천체가 달처럼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 리는 없을 것이다. 100년 동안이나 지구 주위를 돌고 있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2003년에 발견된 소행성 하나도 잠시 지구 주위를 돌다가 지금은 떠나갔다. 지금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몇몇 소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 언젠가 정말로 소행성 하나가 지구에 더 가까이 끌려와 지구 중력에 완전히 묶여 진정한 두 번째 달이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번째 달을 보면서 지구에서 떨어져 나가 만들어져서 인류가 나타나기 전부터 지구를 지키고 있었던 달과 같은 정서를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최근 나의 정서를 자극한 것은 두 번째 달이 되지 못한 소행성이 아니라 퓨전 밴드 ‘두 번째 달’의 ‘판소리 춘향가’였다.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이강환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