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구원, 국가보훈처 자료 인용한 서울인프그래픽스 펴내...미아리, 양화동, 연희동 등 주요 전투지역으로 꼽혀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서울에선 어떤 전투가 벌어졌을까?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서울을 점령했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먼저 대전으로 옮겨 가는 등 한국군의 반발은 미약했지만, 미아리, 양화동, 연희동 등에서 그나마 전투다운 전투가 벌어지는 바람에 주요 정부 기관·요인은 물론 일반인들의 피난도 가능했었다.
7일 서울연구원이 국가보훈처 자료를 인용해 만든 '서울인포그래픽스'에 따르면 6,25 개전 초기 당시 밀려 오는 북한군에 맞서 한국군은 미아리, 길음교, 중랑교에서 진을 치고 맞서 싸웠다.
육군은 28일 오전 2시 30분, 북한군의 남침을 막기 위해 한강 5개교(한강대교, 3개의 철교, 광진교)를 폭파하기까지 했으나, 되레 서울 일원에 배치된 한국군의 퇴로가 차단되어 한강 이북의 상당수 병력과 중장비, 보급품을 상실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양화동, 영등포, 노량진, 흑석동에서는 한강선 방어를 위한 전투가 벌어졌다. 한강교 폭파 이후, 한국군은 한강선 방어를 위해 양화동-광진교간의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해 7월 3일까지 방어선을 지탱했으나, 이후 철수해 오산 안성 지역에서 미군과 함께 새 방어선을 형성했다.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이 연합하여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였지만 속절없이 뒤로 밀려 한때 경상도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남한 국토의 90%를 상실하기도 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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