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한 천재의 뛰어난 데뷔작

Jeff Buckley - Grace(1994)

Jeff Buckley - Grace(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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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는 천재 뮤지션이라는 수식이 딱 어울린다. 그동안 많은 천재들이 있었어도 이토록 훌륭한 데뷔 앨범을 만든 이는 별로 없다. 버클리는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멤피스의 울프강(Wolf River)에서 수영을 하다가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공식 앨범은 이것뿐이다. 하지만 이 한 장만으로도 평론가와 후배 뮤지션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이 앨범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는 많다. 매끄러운 멜로디, 날카롭고 차가운 기타의 톤, 섬세한 감정 표현, 시대와 구별되는 독창성 등.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는 보컬과 담백한 연주다. 특히 그의 보컬은 야생적이지만 보검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사춘기 소녀만큼 섬세하다. 이런 양면성은 그가 동경했던 보컬리스트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를 연상시킨다.

이 걸출한 보컬은 차분한 세션과 어우러지며 두드러진다. 앨범의 악기 구성은 기타와 베이스, 드럼 외에 간간이 건반이나 현악이 추가되는 정도지만 버클리의 탁월한 보컬과 결합하여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레너드 코헨(Lenard Cohen)의 곡을 리메이크 한 '할렐루야(Hallelujah)'가 대표적이다. 싸늘한 톤의 일렉트릭 기타 한 대만으로 반주한 점은 자신감과 대담함을 드러낸다. 기타만을 배경으로 버클리의 음성은 압도적으로 선명하게 들린다.


심플하게 편곡된 트랙들은 앨범 곳곳에서 우아함을 뽐낸다. 찰랑대며 귀에 꽂히는 리프의 ‘라스트 굿바이(Last Goodbye)’, 은은한 현악이 곁들여진 ‘라일락 와인(Lilac Wine)’, 달콤한 멜로디 속에 흐느끼며 사랑을 갈구하는 ‘러버, 유 슈드비 컴 오버(Lover, You Should've Come Over)’ 모두 방해받지 않고 듣고 싶은 곡이다. 앨범 내내 우울을 노래하다가도 직설적인 록 넘버 ‘이터널 라이프(Eternal Life)’가 가슴 속 밑바닥을 긁어준다.

1990년대가 그런지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이 앨범의 세련미는 군계일학이다. 심플한 구성과 섬세한 연주, 디스토션이 절제된 기타 톤, 완벽하게 컨트롤되어 저음부터 고음까지 몇 옥타브씩 넘나드는 보컬 등 이 앨범에 담긴 음악들은 그런지의 거칠고 과격한 질감에 비하면 너무나 고고하다. 친부(親父) 팀 버클리(Tim Buckley)의 후광과 멋진 외모, 31세로 요절한 사연 때문에 과대평가된 것 아닌가 싶다가도 듣다보면 쉽게 빠져든다.


신은 제프 버클리에게 근사한 얼굴과 천재의 재능을 주는 대신 충분한 수명을 챙겨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이 공평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미인박명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세상에는 장수하는 천재들이 꽤 많다. 그저 제프 버클리가 아까울 뿐이다.



서덕

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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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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