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때부터 업무 총괄…20년간 유물 6000점 모아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상업사 자료들은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있는 것'을 지금 정리해두지 않으면, 막상 필요할 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돼요. 평상시에는 역할이 드러나지 않지만,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봉균 신세계상업사박물관장은 웃으며 말했다. 대표적인 상업기업에서 비상업 업무를 하는 게 힘들지는 않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민간기업이 매출은 없고 비용만 발생하는 박물관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동종업계에서도 신세계가 유일하다.
신세계는 왜 박물관을 운영할까. 배 관장은 '사명(使命)'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신세계의 뿌리는 유통이고, 그 역사는 1930년부터입니다. 제가 지켜본 결과 신세계는 업계의 변화와 개혁, 창조를 늘 이끌어왔죠. 이 도전의 역사는 곧 상업의 역사예요. 기록해야 할 필요와 가치가 있습니다. 업계의 선두주자로서, 전통상업 3000년의 역사를 정리하고 알려야 한다는 사명이랄까요."
"지금의 종로 1가에 수남상해라는 직물회사가 있었습니다. 그 회사가 30여년 간 쓴 수백점의 장부와 800여장의 수표를 구하게 됐죠. 그 장부에는 일본, 중국과의 국제무역 내역까지 기록돼있습니다. 구한말 이후 우리나라 전통 상업이 근대화 돼 가는 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인 셈이죠. 이런 자료는 박물관에 있으면 사장돼요. 연구자들에게 복사도 해 드리고 대학에 제공하기도 합니다."
현재 박물관은 용인에 있다. 주로 초, 중, 고등학생들이 견학을 위해 방문하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20여년 간 공을 들인 것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신세계는 이 박물관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관 옆에 있는 옛 제일은행 건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배 관장은 "이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은연중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백화점은 시장 이후에 등장한 두 번째 업태입니다. 최초의 시장과 최초의 백화점이 지리적으로 나란히 있는 셈이죠. 그 사이에 옛 조선저축은행, 제일은행 건물이 있고요. 근대 유통업을 아우르는 박물관이 그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면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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