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케르가 재무총감이 된 1777년 프랑스 정부는 전체 수입의 절반 이상을 이자로 내야 할만큼 부채가 많은 상태였다. 네케르는 무슨 재주로 불과 3~4년 만에 흑자 상태로 만들 수 있었을까.
네케르는 국가재정 상태에 대해 '분식회계'를 한 셈이었다. 이에 대해 제이콥 솔(Jacob Soll)은 "축소 보고의 전통, 또는 국익을 위해 군사 지출을 장부에서 배제하는 오랜 전통이 시작된다"고 평가했다.(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 왔는가)
비록 분식을 했지만 국가 재정상태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한 영향은 컸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왕실과 정부는 세금을 더 거두려고 했기 때문에 네케르의 보고서는 대중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당시 네케르의 보고서에는 그간 신성시되던 왕실의 지출내역까지 포함돼 있었다.
230여년전 프랑스를 삼키고 전 세계의 정치체제를 바꾼 회계 문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대의 경영자들도 절대왕정 시대의 왕처럼 자신들의 재정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오너'나 최고경영자(CEO)의 입맛에 맞게끔 최고재무책임자(CFO)나 회계 담당자들은 네케르처럼 비용을 누락시키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 실적을 부풀리는 일을 심심치 않게 자행하고 있다.
지난해 2분기 대우조선해양은 2조원 규모의 공사손실충당금을 한꺼번에 반영하면서 3조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1분기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은 430억원이었다. 비용(충당금)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돈이 2조원이나 됐다는 얘기였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흑자로 발표했던 2013년 사업보고서까지 적자로 정정해야 했고, 그럴듯하게 포장됐던 조선업의 민낯이 올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삼성SDI가 지난 1분기 7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발표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통상적인 영업손실은 500억원 수준인데 일회성 비용이 6500억원이나 된다는 게 삼성SDI의 설명이다.
삼성SDI는 올 1분기에 구조조정과 관련한 6500억원 규모의 충당금을 반영했다. 여기에 과거 자동차용 전지사업 초기 저가 수주 등과 관련해 4500억원 규모의 부실자산 감액 처리를 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4분기에도 전지분야에서 1500억원이나 되는 일회성 비용을 반영했다.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서는 또 일회성 비용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일부 증권사들은 "전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반복적으로 나타는 일회성 비용이 정말 일회성인지 의문", "부실자산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사실상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
불만스러운 성적표를 공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내키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낙제점을 맞은 한 과목을 다음 성적표로 넘기면 성적이 쑥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면 귀가 솔깃해질 수 있다. 하지만 부실은 숨기고, 뒤로 미룬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눈덩이처럼 더 커지게 마련이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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