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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은행, 자기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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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철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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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혁신은 주변, 변방, 마이너에서 태동한다. 이건 자연과학적 법칙에 가깝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혁신은 '결핍'과 닿아있다. 뭔가 부족한 상태, 그래서 현실에 안주할 수 없을 때 변화의 씨앗이 잉태되고, 혁신의 필요충분조건이 완성된다.

메이저와 중심은 왜 혁신의 발원지가 되지 못할까.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눈곱'만큼의 기득권일지라도, '태산'같은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고, 기어코 잡고야 만다. 그런 의미에서 풍요와 넘침은 혁신의 적이다. 반대로 결핍은 혁신의 토양이다. 국가의 흥망이나 기업의 성쇠에서도 이 같은 법칙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은행업이 위기라고들 한다. 은행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이업종의 경쟁자들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의 진짜 이유는 은행에 '혁신'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태로도 무난히 돈을 벌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에선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요는 망할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은행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준 이유는 "돈을 취급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창구에서건, 결산을 할 때건 직접 돈을 만지다 보면 유혹에 노출이 되고, 임금이 낮으면 유혹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바탕이 돼, 은행원의 호봉제가 정착되고 상대적인 고임금구조가 자리 잡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당업종의 임금은 궁극적으로 그 업종의 생산성에 수렴하게 돼 있다. 생산성을 능가하는 임금상승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윤종규 KB금융회장은 이달 초 "앞으로 자산 성장에 걸맞은 이익을 확보하지 못하는 은행은 자본비율이 하락하게 돼 자산 성장을 제약받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며 "이는 은행들이 생존게임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라고 했다. 은행업이 갖고 있는 위기적 상황을 갈파한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엔 어마어마한 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이 대규모 감원과 해고에 들어갔다. 비단 조선 철강 해운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어찌 보면 이제 시작일 뿐이다.

구조조정은 이율배반적이다. 양면을 갖고 있다. 구조조정이란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채무상환능력을 높이는 일련의 작업이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해고나 감원의 고통이 뒤따른다. 이를 겪어야 하는 개인에겐 '우주를 잃는' 아픔이다.

이같이 자기모순적인 구조조정도 혁신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혁신이 없는 산업, 혁신이 없는 기업, 혁신이 없는 개인에 대한 부메랑이라고 말이다.

'지속가능한 메이저'를 꿈꾸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내부의 혁신으로 내부의 중심(기득권)을 대체하는 것일 게다. 글로벌기업들이 사내 벤처를 만들어가면서까지 내부의 혁신을 장려하고 키우는 이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기득권을 가진 지배적 사업자는 판을 뒤집는 혁신에 소극적이다. 지배적 사업자가 이를 극복하려면 내부적으로 적에 가까운 집단을 키워야 하는 데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 이건 굉장한 낭비 요인이다.

"죽어야 다시 태어나는" 이 모순이 바로 혁신의 본래 모습이다. 자기파괴적인 혁신, 지금 은행업에 필요한 혁신이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일본항공(JAL)을 부활시킨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과 혁신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말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혁신을 강요당하게 된다. 지금의 은행업, 은행원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경구다.





이의철 금융부장 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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