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는 깊이 새겨진 두 개의 '4월13일'이 있다. '임시정부수립'과 '호헌선언'이다. 앞은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1919년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운 날이고, 뒤는 1987년 5공화국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외면하고 개헌논의를 중단시킨 날이다. 역사의 음영이 뚜렷한 두개의 4월13일. 이틀 후 또 하나의 4ㆍ13이 기다린다. 20대 국회의원 300명을 뽑는 총선의 날이다. 세 번째 4ㆍ13, 2016년 총선이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는 이제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임시정부를 떠올리며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다시 펴 보았다. 3ㆍ1운동 직후 백범은 고향을 떠나 중국 안동을 거쳐 상하이에 도착, 동지들을 규합해 임시정부를 세운다. 백범일지는 18장 '상해로 가다' 편에서 그 때를 이렇게 적었다.
'동지들을 심방하여 이동녕, 이광수, 김홍서, 서병호 등 동지들을 만났다. 임시정부는 그 때에 조직됐다.(중략) 나는 내무위원의 한 사람으로 피선되었다.' 백범이 경무국장인 안창호에게 임정 청사 '문지기'를 청원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이 대목에서 나온다.
1987년 개정 헌법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상징처럼 돼버린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119조 2항에 들어간 것도 그 때다. 이번 총선에서는 헌법논쟁이 유난히 많았다. 새누리당 내부 갈등의 핵이었던 유승민 의원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2항을 외쳤다. 강봉균 새누리당 선대위원장과 김종인 더민주당 대표는 "경제민주화는 포퓰리즘" "헌법은 읽어 봤느냐"며 설전을 벌였다.
100년 가까운 시공을 넘어 '4ㆍ13 임정'과 '4ㆍ13호헌',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4ㆍ13 총선'이 역사의 끈으로 묶여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그 매개가 나라의 근본 규범인 헌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역사와 선조들이 간절히 말하려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총선 후보들은 달아올랐지만 유권자들은 냉랭하다. 최악의 19대 국회를 지켜봤다. 막장 공천과정을 보면서 20대에 대한 기대도 접었다. 공약도 허황하다. 여야가 내건 지역개발공약 사업비만 해도 170조원을 넘어선다. 대책 없는 공약폭탄이다.
이번 총선이 최악의 공천, 최악의 투표, 최악의 선거로 막 내린다면 그 또한 역사의 기록이 될 것이다. 하지만 '헌법'으로 묶인 4ㆍ13의 집요한 인연이 그렇게 허망하게 끝날까.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권리, 의무를 강조한다. 총선일이 4월13일로 잡힌 것은 최악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독립과 민주화 열망을 불태웠던 뜨거운 역사를 잊지 말라는 헌법정신의 준엄한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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