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려다 성나게 하시지 말입니다
그러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모든 아재 개그가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유치하거나 썰렁하면 오히려 분위기를 깨고 ‘아재스럽다’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들을 상대해야 하는 정치인들이라면 이런 아재 개그의 유혹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잘못된 개그는 잠들기 전에 피식 웃게 하기보다는 화가 나 잠을 설치게 한다. 유권자의 표심을 잃을 수 있다는 점도 무시 못 한다. 정치인들이 펼쳤던 다양한 아재 개그들 중 화제가 됐던 사례들을 모아봤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4일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했다. 안 대표는 이날 ‘야권연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연대 물어보시면 고대 분들이 섭섭해 하신다”고 답했다. 연대(連帶)라는 단어를 연세대학교의 준말로 치환하고 이를 고려대학교와 엮은 답변이었다.
안 대표의 이런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1월 안 대표가 무소속 의원이던 시절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 여의도 한 식당에서 회동을 한 적이 있다. 창당을 준비 중이던 안 의원은 회동 전 당 차원의 연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역시 “연대 얘기하면 고대 분들이 섭섭해 한다”고 맞받아친 적이 있다. 안 대표의 ‘아재 감각’은 2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셈이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 정치인이 한강에 빠지면? “물이 오염된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1월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패널들과 열띤 토론을 펼치며 입담을 뽐냈다. 각 국가를 대표하는 패널들이 정치인들을 소재로 한 농담을 소개하던 시간이었다. 나 의원 역시 한국의 정치 농담을 소개하며 “정치인이 한강에 빠지면 구할 거냐, 말 거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어지는 나 의원의 답변은 ‘셀프 디스’에 가까웠다. 나 의원은 “빨리 구해야 한다. 물이 오염된다”고 말해 폭소 아닌 폭소를 자아냈다. 나 의원은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서울 동작구 을 새누리당 후보로 나섰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평소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솔직하면서도 거친 입담은 정치계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나는 좌파다.> 왼손에 파를 들면 빨갱이 좌파입니까’라는 글을 게시하며 왼손에 파를 든 사진을 첨부했다. 곧이어 왼손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진을 첨부해 ‘왼손에 커피잔 들고 빨대를 꽂아 마시면 종북좌빨입니까?’라는 글도 올렸다. 둘 모두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전형적인 아재 개그였다. 현재까지 윗글은 리트윗 370회, 아래글은 리트윗 405회를 기록했다. 정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후, 더컸유세단장을 맡아 같은 당 후보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 “피투가 피 튀길지도”
성남시장이자 K리그 성남FC의 구단주인 이재명 시장 역시 SNS로 자주 소통한다. K리그 클래식 개막을 앞둔 3월 초, 이 시장은 다소 도발적인 내용의 글을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성남FC가 외국인 선수 피투를 영입했다는 기사 링크와 함께 ‘<피투가 피 튀길지도... 염태영 수원FC 구단주님 혹 쫄리시나요? 성남 첫 원정경기 상대가 수원FC인데 수원에서 만납시다>’라는 글이었다. 외국인 선수의 이름을 활용한 ‘라임’을 선보인 것이다.
K리그 클래식에 처음으로 올라온 수원FC의 구단주인 염태영 수원시장 역시 트위터를 통해 ‘시즌 시작 직전까지 외국선수 영입해야 할 정도로 걱정되시나요?’라고 응수했다. 이 시장의 아재 개그로 시작한 두 시장의 ‘썰전’은 일명 ‘깃발더비’로 번졌다. 두 시장이 성남FC와 수원FC의 승부에 따라 구단기를 서로의 경기장에 꽂는 이벤트에 합의한 것이었다.
3월 19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진행된 양 팀의 경기는 한 골씩 주고받으며 사이좋게 1:1로 마무리됐다. 두 시장은 앞으로의 맞대결에서도 ‘깃발더비’를 이어가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 “시장이 반찬이니 맛있을 겁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3년 5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시장이 반찬이니 맛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시장(市長)과 ‘배고픔’을 의미하는 시장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박 시장은 이듬해 3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종종 쓰는 건배사가 ‘시장이 반찬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박 시장의 ‘반찬론’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 2월, 새누리당 시장후보로 정몽준 당시 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꼽히자 “선거란 게 유권자 입장에서 좋은 반찬이 올라와야 하는데 그런 분들이 많이 오셔야 풍성한 식탁이 되고 논쟁과 토론을 거쳐 좋은 시정이 펼쳐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 = “새우는 깡이고 고래는 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2012년 1월,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화제가 됐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대해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고, 문을 닫는다”라며 아재 개그의 포문을 열었다. 뒤이어 패널들에게 새우와 고래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에 대해 물었다. 박 대통령이 밝힌 정답은 다음과 같다. “새우는 깡이고 고래는 밥이라서 새우가 이긴다.”
박 대통령의 ‘개그 욕심’은 종종 나타난다. 대선후보 시절이던 2012년 8월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참석한 ‘반값등록금 실현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반값등록금 실현을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며 “두근두근 합해서 네 근이다”고 특유의 유머감각을 뽐낸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올해 1월 첫 국무회의에서도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흘마다 작심하면 극복할 수 있다”라는 농담을 건넸다. 이쯤 되면 박 대통령의 ‘아재 개그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진다.
권성회 수습기자 stree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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