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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잊힐 권리'…"사적 검열 강요" vs "보장해야 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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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들 배제 범위·규정 모호해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
기존 법에서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는 지적도
방통위 이달 중 위원회 상정할 예정


한국판 '잊힐 권리'…"사적 검열 강요" vs "보장해야 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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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사업자가 글을 읽고 공익과 관련한 사항을 판단하는 것은 사적 검열을 강요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용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우려가 존재한다."(차재필 인터넷기업협회정책실장)

"국민에게 당연히 보장돼야하는 권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내 사업자나 해외 사업자 모두 해당되는 책무가 있다." (엄열 방통위 과장)

인터넷에 쓴 자기 게시물을 해당 게시판이나 포털에 노출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제도화된다. 사업자들은 모호한 조항을 해석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 삼았지만 방통위는 향후 이용자들의 입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25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안)' 세미나와 토론회를 개최했다.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이란, 이용자가 게시판 관리자 또는 검색서비스 사업자(포털)에게 게시물을 타인이 볼 수 없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유럽에서는 2010년 스페인 이용자가 구글을 대상으로 검색결과 삭제 소송을 벌이면서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토론자들은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이 유럽에서 통용되는 잊힐 권리와 다른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잊힐 권리는 타인이 작성한 게시물에 대해서도 개인이 검색 사업자에게 자신의 개인정보를 포함한 링크를 제거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

차재필 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유럽의 사례는 타인이 올린 글로 인한 명예훼손이 중점이 되고 있지만 방통위 가이드라인은 본인이 올린 게시물에 한정했고 알권리나 표현의 자유 침해의 위험성이 큰데 비해 법률적인 근거가 미약하다"고 말했다.

명예훼손과 관련해 '임시조치'라는 제도가 있는데 또 다른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디지털 유산이나 개인정보 삭제, 임시조치 같은 게시물 삭제나 차단 등 요구권을 묶어서 잊힐 권리로 볼 지, 유럽에서 논의한 것처럼 개인정보 삭제요구권으로 볼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며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각종 정보를 삭제하려는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정보통신망법 등 기존 법에서도 충분히 수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환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권리행사 대상에 타인의 게시물과 언론의 기사를 배제한 것은 깊은 고민 끝에 나온 적절한 선택"이라며 "자기게시물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것에 대해 이 게시물을 삭제할 지에 대한 부분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시물 접근배제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지도 중요한 문제다. 가이드라인안에서는 접근배제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경우를 ▲법으로 접근 차단이나 삭제가 금지된 경우 ▲접근 배제를 요청받은 게시물이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로 한정했다. 여기서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에 대한 판단을 사업자에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병철 연세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게시판 관리자가 그런 고도의 규범적 개념을 판단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고 이의신청 사유가 허용될 경우 게시판 관리자가 다 책임질 수 있는지도 깊이있게 검토돼야 한다"며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직접적 연관이 되기 때문에 접근배제 요청과 관련된 사항이 어느 범주까지 허용되야 하느냐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방통위가 요청자가 쓴 게시물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에 명확한 방침을 제시하지 않은 부분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진규 네이버 개인정보보호팀장은 "자기게시물 인지를 판단할 때 유추 가능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은 너무 애매모호하고, 기준이 애매할 경우 사업자들은 아예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며 "게시글 작성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댓글 작성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차재필 인기협 실장은 "게시판에서 삭제가 되지 않을 경우 검색사업자에게 하라는 것은 검색사업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검색품질 저하, 사용자 이탈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엄열 방통위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은 "자기정보가 노출되기 쉬운 경로가 검색 결과로 나오는 경우이고, 국내 사업자나 해외 사업자 모두 해당되는 책무가 있다"며 "검색 결과에 남는다면 결국 이용자 피해로 이어지고 그 부분에서 포털 등 검색 사업자들도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통위는 해당 가이드라인을 이달 중 위원회에 상정하고 이르면 4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지만 향후 법제화될 경우 뼈대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기주 방통위 상임위원은 "이해당사자들이 이용자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차원에서 접근해달라"며 "결론적으로 방통위도, 이용자도 그렇고, 접점을 찾아갈 수 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완벽한 제도를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협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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