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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이게 사는 거니" 한마디에 우린 제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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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보다 치열한 삶의 연속…서울 토박이의 생생한 이주기

제주에서 당신을 생각했다

제주에서 당신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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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서울시 서대문구 천연동. 아내와 결혼하고 4년을 보낸 동네다. 그 사이 아파트 전세 값은 9000만원이 뛰었다. 전세매물도 많지 않아 나오는 족족 다 거래됐다.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재계약 생각해보셨어요?" "너무 비싸서 힘들 것 같네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내놓겠다"고 통보했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집 앞 단골 커피가게를 찾았다. 형뻘인 주인이 일곱 평 남짓한 공간에서 커피를 볶았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공짜"라고 했다. "서울 떠나니까 이 커피가 마지막이겠네요. 해남 땅끝마을로 가요." 귀농은 아니었다. 새로 가게를 열어 커피장사를 할 요량이었다. 허름한 농가주택을 개조하는지 계산대에 시공 상식 책이 있었다.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제주에서 당신을 생각했다'를 읽으며 커피가게 주인을 떠올린다. 서울 토박이로 20대에 작은 이동통신 가게를 연 뒤 경쟁이 치열하다는 요식업으로 업종을 바꿨다. 줄곧 영세 자영업자로 살아온 그들에게 서울은 따뜻한 고향이 아니었다. 모질기만 한 각축장이다. 저자는 회고한다. "우리는 사력을 다해 앞으로 달렸다. 남보다 늦게 시작했고, 남보다 부족했고, 남보다 나은 배경도 없었다. 누군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증과 실패를 맛봤다는 불안감이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주위에서 비슷한 말을 많이 듣는다. 입버릇처럼 "다 때려치우고 귀농할까"라고 말하는 친구도 세 명 있다. 가끔 비슷한 생각을 한다. tvN '삼시세끼'의 이서진처럼 뙤약볕에서 수수를 베고, 앞마당에서 재배한 채소로 국을 끓이는 모습을 떠올린다. 후딱 일을 해치우고 청하는 낮잠이 어떤 맛일지 상상도 해본다. 그래도 엄두는 나지 않는다. 여전히 서울 공기를 마시는 친구들과 이유는 같을 것이다. 주위에서 실천에 옮긴 사람은 커피가게 주인 한 명뿐이다. 저자는 "'그만하자. 이게 사는 거니?'라는 남편의 비수 같은 한 마디가 결정타가 됐다"고 설명한다. "몸은 축내고 관계는 파탄 내는 서울살이를 단번에 종결시켰다. 일단 저질러보자고 마음먹고 나니 못할 게 없어졌다."

그가 향한 곳은 제주다. 중국인 관광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섬. 이효리, 장필순, 허수경 등 많은 연예인들의 터전으로도 유명하다. MBC '무한도전'에서 이효리는 유재석을 붙잡고 "오빠, 나 서울 가고 싶어"라고 졸라댄다. 진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카메라에 담긴 전원의 삶이 도시를 까맣게 잊게 할 만큼 낭만적이었다. 저자도 "갖은 후유증을 치유하고 더불어 사는 소박한 삶의 아름다움에 가닿았다"고 한다. "제주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육지에서 맛본 쓰디쓴 실패를 성공으로 설욕할 기회가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육지에서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라면 제주에서는 보다 윤택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낭만과 힐링을 좇는데 몰두하지 않는다. "삶터를 바꾸는 일은 치열한 삶의 연속이자 어디까지나 현실"이라며 생생한 경험담을 전하는데 더 주력한다. 제주 이주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솔깃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가까운 미래에 제주 남단의 가파도로 다시 거처를 옮긴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처음 제주 땅을 밟았을 때처럼 무엇을 해 먹고 살지 궁리한다. 그래도 자세는 여유가 넘친다. 도시인에게 위안을 건넬 정도다. 가끔씩은 쉬었다 가도 괜찮다고, 조금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그래도 살맛이 난다고.
<제주에서 당신을 생각했다/김재이 지음/부키/1만3800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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