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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스카 상 앞둔 조수미, '유스' 소렌티노에게서 카라얀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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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스카 상 앞둔 조수미, '유스' 소렌티노에게서 카라얀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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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1983년 3월 28일. 스물한 살 앳된 처녀가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내린 시간은 새벽 3시. 그는 목적지인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가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그곳에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낯섦과 동시에 자유를, 그리고 자유를 어떻게 잘 쓸 것인가에 대한 책임감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났다. 2016년 2월, 처녀는 30년째 '신이 내린 목소리'로 불리는 위대한 성악가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주연으로 공연한 동양 최초의 프리마돈나로서 이탈리아 최고의 소프라노에게 수여하는 '황금 기러기상'(1993), 최고 성악가에게 주는 '티베르니 금상'(2015)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덧 중년, 화려한 지금을 뒤로 하고 은퇴 후의 삶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나이다.
소프라노 조수미(54)가 은퇴한 명지휘자의 삶을 그린 영화 '유스'에 마음이 동한 이유다. '영화'라는 익숙지 않은 장르에 '수미 조'라는 유명 성악가로 출연하고 엔딩곡 '심플 송(simple song)'도 불렀다. 이 곡은 오는 28일 열리는 제8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제가 부문에 수상 후보로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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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를 24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스크린에서 보는 내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게다가 다른 인물도 아니고 나 자신으로 출연하는 거라 더욱 뜻 깊었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역이잖나. 영화에서 그 점이 강조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유스'를 두고 "'젊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영화다"라며 "흔히 생각하는 신체적 의미가 아닌 두려움에 갇히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은 젊다는 의미"라고 했다. "영화 대본을 읽고 출연을 결정하고 주제가를 녹음하고 등장 장면을 촬영하고…. 이 과정을 거치며 나도 '젊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심플 송'은 은퇴한 지휘자이자 작곡가 프레드가 아내 멜라니를 위해 만든 곡으로 그의 대표적 레퍼토리다. 프레드는 아내가 치매에 걸린 뒤 그 곡을 연주하기를 거부해왔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마지막 장면에 '수미 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곡을 무대에 올린다.

조수미는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곡"이라며 "단순하지만 복잡한 구석이 많은 바흐와 스트라빈스키를 두루 닮았다"고 했다. 실제로 작곡가 데이비드 랑(59)은 스트라빈스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조수미는 "이 곡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라며 "사랑을 해 본 이들만이 노래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때로는 충만한 기분을 느끼고, 자제력을 잃기도 하고, 모든 걸 아는 것 같지만 때로는 너무나 외로운 밤을 보내기도 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당신 곁에 언제나 있고 싶은 것'(가사). 이게 바로 사랑 아닐까."

파올로 소렌티노(46) 감독의 러브콜도 영화 출연을 결심한 이유였다. 조수미는 그의 전작 '일 디보', '아버지를 위한 노래', '그레이트 뷰티' 등을 인상 깊게 봤다. 소렌티노 감독은 조수미의 메이크업, 의상, 헤어는 물론 손 표현에까지 정성을 들였다. 조수미는 "워낙 세계적인 거장이라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꼼꼼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었다"며 "현장을 완벽하게 통제하면서 배우와 스태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떠올렸다. 새벽에 일어나 메이크업을 마치고 곧장 노래해야 하는 조수미를 세심하게 배려하기도 했다. 그는 "힘들 때마다 소렌티노 감독이 다가와 나를 다독이며 방향을 짚어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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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는 소렌티노 감독의 카리스마와 세심함에서 스승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떠올렸다. 조수미는 1988년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무도회' 오디션 장소에서 카라얀을 처음 만났다. 카라얀은 조수미의 노래를 듣고 "신이 내린 소리"라며 "이런 목소리는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의 선물"이라고 극찬했다. 조수미에게 애정이 담긴 한 마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목소리를 아껴야 해. '밤의 여왕' 역이 많이 들어오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성대에 무리가 가니까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연주 욕심도 너무 부리지마. 자기에게 헌신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큰 그릇이 돼."(조수미 자서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중)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20대 시절, 조수미는 "거장의 이 한 마디가 나에게 구원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렇게 승승장구했다. 조수미는 카라얀을 비롯해 다니엘 바렌보임, 주빈 메타, 게오르그 솔티와 같은 세계적 지휘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조수미에게 '영화'는 낯선 장르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그 모습이 낯설지는 않다. 데뷔 초기부터 '내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겠다'는 것이 조수미의 목표였다. 팝송과 뮤지컬 넘버, 한국 가곡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다. 2007년 발매한 앨범 '조수미 101'에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미스 사이공' 등과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에 나온 노래를 담았다.

지난해 8월에는 한국 대중가요를 담은 '그.리.다.'를 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 서정적인 가요 일곱 곡을 불렀다. 그는 당시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며 받는 진심 어린 박수도 고난도 기교로 받는 박수 못지않게 기쁘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도전이 클래식에 대한 소홀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수첩에 빼곡한 스케줄 대부분은 여전히 클래식이다. 그저 조수미는 성악가에서 예술가로 성장하고 있는 것뿐이다.

"'유스'의 인물들처럼, 언제나 지금처럼, 나의 음악에 그리고 나의 예술에 충실하고 싶다. 나의 존엄이 있는 한 나의 예술은 계속될 것이다. 내일 죽음을 맞더라도 힘껏 원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 그것이 영원한 젊음의 비결이 아닐까."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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