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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월 스님 ‘진관사 태극기’ 3.1절 은평 거리 게양

최종수정 2016.02.22 15:35 기사입력 2016.02.2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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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日章旗) 위에 덧그려진 진관사 태극기 가로기 2월26~3월1일 은평구 주요 가로변 총 1360기 게양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은평구(구청장 김우영)는 제97주년 3.1절을 맞아 은평의 독립운동가인 백초월 스님을 선양, 그 일환으로 지역내 사찰인 진관사에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등록문화재 제458호)를 가로기로 게양한다.

백초월(白初月,1878.2.17~1944.6.29) 스님은 경남 고성출신으로 1891년 지리산 영원사(靈源寺)로 출가, 해인사(海印寺)에서 불교 경학 공부를 마쳤다.
백초월 스님은 대중들에게 독립운동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큰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업적에 관한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

백초월 스님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불교계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4월 서울로 올라와 중앙학림(中央學林) 내에 한국민단본부(韓國民團本部)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군에게 전달했다.
은평구 보건소 홍보 현수막 게첩

은평구 보건소 홍보 현수막 게첩


또 비밀단체인 일심회(一心會)를 결성, ‘한 마음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취지 아래 불교 교리와 민족의식을 전달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후 1939년 ‘용산역 낙서사건’ 배후로 3년간 구속됐다가 출옥한 백초월 스님은 계속해 독립운동 활동을 하다 체포, 옥고를 치르다 1944년6월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은평구(구청장 김우영)가 가로기로 게양하려는 ‘진관사 태극기’는 백초월 스님이 독립운동 당시 사용하고 숨겨둔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로 2009년5월26일 진관사 칠성각 해체 및 보수공사를 진행하던 중 독립신문을 비롯한 6종 20여점이 태극기 안에 싸인채로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발견됐다.

이는 1919년 항일운동의 거점이 진관사였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문화재다.

발견된 태극기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색이 변하고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타 약간 손상됐지만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다.

크기는 가로 89cm, 세로 70cm, 태극의 직경은 32cm이다.

이 태극기의 4괘는 현재의 국기와 비교하면 리·감 위치가 바뀌어 있고 이는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의 양식과 동일하다.
가로기 게양 모습

가로기 게양 모습


태극은 청·적색으로 현재의 국기를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

‘진관사 태극기’가 가로기로 게양되는 기간은 2월26~3월1일 5일간 게양 예정이며, 게양구간은 주요 가로변 중 5개 구간(통일로, 은평로, 수색로, 연서로, 서오릉로)에 게양수량은 총 1360여기다.

게양방법은 태극기를 왼쪽, ‘진관사 태극기’를 오른쪽에 게양한다.

이번 진관사 태극기 가로기 게양은 3.1절을 맞아 뜻 깊은 은평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구민들에게 선사, 나라를 지켜낸 순국선열들께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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