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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 논란]80년대 '룸살롱의 쿠데타'가 결정타

최종수정 2016.02.19 11:20 기사입력 2016.02.1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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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문화 바뀌고…여종업원 살해사건으로 여론 악화

[아시아경제 윤나영 기자]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70~80년대 밤의 세계를 주름잡던 '요정'정치를 두고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요정(料亭)'은 접대부를 고용해 고급 요리와 술을 판 고급 유흥업소였다. 지금 룸살롱의 원조 격으로 1960~80년대만 해도 정치인, 고위 관리, 재벌, 군인 등이 모여 은밀한 대화와 각종 뒷거래를 했던 '밀실정치'의 상징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밤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요정에서 나라의 운명적인 일들이 결정됐다. 특히 7.4 남북공동성명 만찬장, 남북적십자 회담장 등으로 사용되면서 국제 회담의 비밀 장소로 유명해진 곳이 삼청각이었다.

서울의 3대요정으로 꼽혔던 삼청각, 대원각, 오진암(사람에 따라 오진암 대신 청운동에 있었던 청운각을 3대요정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은 당시 권력 실세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었다. 과거 중앙정보부 요원이 저술한 책 '산자여 말하라(2001)'에 의하면 중앙정보부가 아예 요정의 정보를 총괄 수집, 관리하는 '미림(美林)'이라는 팀을 만들어 운영했을 정도로 권력과 밤의 세계는 가까웠다.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 요정정치는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당시 요정정치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엄청났다. 요정정치가 안고 있는 비밀거래, 공직기강 해이와 풍기문란, 축첩문제 등이 연일 도마에 오르자 여성단체도 들고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가운데 당시 최대 요정이었던 선운각 등에서 일하던 정인숙이라는 접대부가 총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 대한민국을 벌컥 뒤집어 놓았다. 일명 '정인숙 피살 사건'을 계기로 '요정정치'는 국가적인 논란거리가 됐고, 이후 요정은 쇠퇴기를 걸었다.

요정도 시대 분위가 바뀌면서 대부분이 전통음식점으로 변했다. 요정정치의 산실이었던 대원각·삼청각도 1990년대 말에 이르러 폐쇄됐다.

대원각은 90년대에 사찰로 재탄생했다.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여주인은 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대원각을 송광사에 기증했다. 법정스님이 나중에 여주인의 법명인 길상화를 따서 '길상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 최초의 근대 요정인 오진암은 2010년 부동산개발회사에 매각돼 호텔이 들어서기로 했다. 그러나 한옥의 가치와 역사성에 주목한 종로구가 개발회사를 설득해 호텔 대신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윤나영 기자 dailybes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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