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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제주 폭설에 결항…'혼돈 속 4일'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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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폭설로 관광객 6만여명 발 묶여
1박2일 출장이 항공기 결항으로 3박4일로
기대에서 체념으로…25일도 항공기 운항재개 어려울 듯


24일 새벽 제주공항 내 항공사의 항공권 발권데스크 앞에서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기를 바라는 많은 체류객이 쪽잠을 청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새벽 제주공항 내 항공사의 항공권 발권데스크 앞에서 항공편 운항이 재개되기를 바라는 많은 체류객이 쪽잠을 청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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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연수원의 제주 이전을 기념해서 22일부터 23일까지 1박2일 제주출장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달초 제주도로 출장을 가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한 정부 기관에 새로 출입하게 된지 얼마되지 않은 탓에 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다. 한파가 밀려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1박2일 출장이 3박4일로 이어질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22일은 영하의 기온이었지만 하늘은 하루 종일 맑았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출발해 청주공항을 가는 길은 순탄했다. 청주공항에서 비행기가 20여분 가량 연착됐지만 지방공항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 생각하며 오후 3시께 제주행 비행기가 올랐다.

제주에 도착하니 바람이 많이 불어왔다. 삼다도(三多島)를 실감케 하는 바람이라 여겼다. 40여분 남짓 교육원을 돌아보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다만 달무리가 지면서 눈이 올 조짐을 보였다.
둘째날인 23일 아침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는 버스가 갑작스런 폭설을 만났다. 1~2cm 가량 눈이 쌓이면서 안전을 위해 바퀴에 체인을 채웠다. 아침식사를 끝냈지만 눈은 계속 내렸고 예정됐던 오름 등반은 취소됐다. 일부 기자들끼리 공항에 결항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24일 유례없는 폭설이 내린 제주 시내 전경

24일 유례없는 폭설이 내린 제주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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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보다 먼저 돌아가는 비행기를 예약한 한 경제지의 임모기자는 오전 10시께 공항으로 향했다. 먼저 돌아가는 그를 몇몇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제주공항에서 결항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 비행 재개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공항에 발이 묶인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됐고 하루 더 머물러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양말이나 속옷이 여벌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출장 이후 스케줄을 잡은 사람들도 이를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루 종일 내린 눈은 도로를 빙판길로 만들었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은 제주 일대 정전으로 불이 모두 꺼져 헐레벌떡 도로 나와야 했다. 호텔 등에는 사람들이 몰려 숙박난이 벌어졌다. 기자들도 방을 구하지 못해 3인1실에서 지내야 했다.

먼저 출발했던 그 기자는 비행기에서 6시간을 대기하다가 저녁에야 도로 나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를 마중가기 위해 차편을 알아봤지만 대중교통은 마비상황이었고 도로 위에 택시도 없었다. 가까스로 택시를 불러 웃돈을 주겠다고 설득해 공항에 향했다.

저녁 9시가 다 되서야 택시가 도착했지만 택시기사는 한사코 미터기 요금만 받겠다고 고집을 부려 어쩔 수 없이 3만원을 냈다.

24일 제주 시내에서 운전자들은 얼어붙은 빙판길에서 거북이 운전을 해야했다.

24일 제주 시내에서 운전자들은 얼어붙은 빙판길에서 거북이 운전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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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째인 24일은 기대가 체념으로 바뀌었다. 일요일이면 날이 풀려 출근에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날 정오까지 공항을 폐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눈발이 오락가락하면서 어제보다는 기온이 풀리며 곧 안정을 되찾아갔다. 관광객 중 일부는 오전부터 공항을 빠져나와 제주 시내나 인근 호텔로 발길을 옮겨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음식점에도 등산복 차림의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제주시내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만난 최모씨(45)는 "주말동안 한라산에 설경을 구경하려고 왔는데 한라산은 올라가지도 못하고 영화를 보러 올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오늘 돌아가려고 했지만 하루 더 머물려야 해서 제주 지인의 집에 신세를 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활에서 불편은 이어졌다. 제주시 외도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강모씨(41)는 "주말 동안 추워서 커피를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눈이 많이 와서 좋지만은 않다"며 "아무래도 눈이 많이 와서 일손도 더 많이 가고 물건도 배달이 늦어져 이만저만 불편한게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이날 25일 오전 9시까지 공항 폐쇄를 연장한다고 발표했고, 관광객들은 제주에서 하루 밤을 더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9시를 기해 공항 폐쇄를 25일 오후 8시까지 연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월요일에도 제주를 떠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다시 찾아왔다.

25일 제주에 발이 묶인지 나흘째를 맞았다. 제주도 산간에는 대설경보가 산간을 제외한 지역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상태다. 5·16도로를 포함해 도로 곳곳은 통행제한이 내려졌고 대중교통을 하라는 속보가 TV에 계속 떠오르고 있다.

제주공항공사는 24일까지 항공기 결항으로 피해승객이 약 6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날까지 결항이 이어지면서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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