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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의사 vs 한의사…철천지 앙숙,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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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라이벌이요? 누가요? 한의사가요?"

서울지역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에게 "한의사 라이벌이 누구냐"고 물으니 코웃음부터 쳤다. 의사와 한의사를 비교한다고 하니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붙어있는 '의료는 의사에게'로 시작되는 포스터에선 "국민의 안전을 뒷전으로 생각하는 한방은 퇴출되어야 합니다"라는 극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뼛속부터 라이벌 = 의사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의사와 한의사는 라이벌이다. 우선 아픈 환자를 치료한다는 직업 목적이 같다.

하지만 방식은 다르다. 서양에서 발전한 의학은 해부학을 기초로 인체의 기능과 질병을 설명한다. 질병은 인체의 부위에 변화가 생겨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에 해당 부위를 직접 치료한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되는 동안의 기록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과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서 사용한 치료법인 한의학은 인체는 각각의 장기와 조직이 긴밀하게 연결됐다고 인식한다.

질병도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반응으로 , 하나하나의 증상이 독립된 것이 아니고 모두 긴밀한 연계가 있다고 본다.

해당 부위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보다 연계된 인체부위에 침을 놓거나 약을 쓰고, 비슷한 증상도 치료 방법이 사람마다 달라 의사들은 '비과학적'이라고 폄하한다.

의사와 한의사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은 뼛속부터 경쟁심이 자리 잡은 탓일 수 있다.

의사와 한의사 모두 어릴 때부터 수재로 불리던 이들이다. 공부에 대해선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였다. 학창시절엔 전교 1등자리를 놓고 다퉜고, 고교 졸업 후엔 각각 의대와 한의대에 갔다.

한의사 김모씨(34)는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면서 "고등학교 때 경쟁자들이 대부분 한의대에 들어가거나 의대를 갔다"고 말했다. 전국 석차가 400등이던 김씨는 원광대 한의대에 입학했고, 옆 반의 경쟁자는 서울대 의대로 진학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김모씨(42)는 "공부에선 빠지지 않았다"면서 "의대를 진학한 것은 부모님이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의 의대는 입시성적인 상위 1.5% 안에 들어야 지원이 가능했다. 한의대는 '구말천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1990년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의대를 웃도는 높은 성적이 필요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는 상위 0.3% 학생이 가까스로 입학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한의사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소문에 커트라인은 상위 2~3% 선으로 떨어졌다.

◆한의사의 흑역사 = 우리나라 전통의학인 한의학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천덕꾸러기가 됐다.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나 종두법을 발견한 지석영 등 화려한 의술을 자랑한 한의사가 많았지만, 일본의 통치 아래에선 한의학은 구식으로 전락했다.

당시 일제의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의사는 지금의 의료기사격인 '의생'으로 불렸고, 면허도 의사에게만 발급됐다.

해방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948년 제정된 의료법에는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직업 범위에서 한의사는 빠졌다. 이 후 한의사들의 끈질긴 요구에 한의사가 의료법에서 인정받았지만 70년대까지 의사들은 한의사가 '흰 가운'을 입는 것조차 반대했다.

한의사들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 의대와 한의대를 저울질하던 시기다. 민주화 운동으로 기득권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서양의학의 대척점에 있는 대체의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난 덕분이다.

한의계의 목소리도 커졌다. 1990년대는 약국의 한약재 판매를 금지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놓고 약사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도 했다. 양한방 갈등이 처음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이후 의사와 한의사는 의료행위를 놓고 사사건건 부딪히며 배척하는 관계로 악화됐다.

◆의료기기 사용 놓고 양한방 진흙탕 싸움도 = 지난해에는 양한방 단체의 수장이 장기간 단식에 돌입하는 등 갈등이 극에 달했다. 정부가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기요틴'으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제를 꼽고, 이를 허용하려고 하자 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선 탓이다.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의사들이 목소리는 2013년부터 더 높아졌다. 헌법재판소가 안압측정기 등을 사용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한의사 2명이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청구에서 한의사들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당시 헌재는 안압측정기와 자동안굴절검사기, 자동시야측정장비, 청력검사기, 세극등현미경 등 기기는 측정 결과가 자동 추출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 없고 환자의 신체에 위해하지 않는다며 한의사들의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한의사들은 이들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엑스레이와 초음파 등 진단 의료기기 사용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엑스레이의 경우 한의원에서 진료빈도가 높은 근골격계 질환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이를 보기 위해선 환자가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한의사에게 제출하는 번거로움을 줄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는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범위를 정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엑스레이와 초음파로 진단하는 것도 의료행위이며, 치료와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전문의도 엑스레이 판독은 어려워할 정도로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것이다.

복지부가 환자의 안전을 이유로 의사들의 손을 들어줄 기미가 보이자 지난해 대한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은 단식에 돌입했고,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도 단식으로 맞섰다. 양측간 갈등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지시를 받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만류하면서 일단락됐지만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범위가 최종 결정되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복지부 관계자는 "양한방 통합진료가 맞다"면서 "각자의 기득권을 지키느라 통합의 시기를 놓쳤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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