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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신뢰 생태계] 1. 신뢰 꼴찌권 '大불신국'…이래선 비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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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곧 국가경쟁력…불신 깊은만큼 사회적 비용 높아"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2015년 여름 대한민국. 불신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는 국가 전체를 신뢰 부재의 땅으로 만들었다. 질병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 대응과 초동 대응이 미흡했던 것이 화를 키웠지만 불신이 똬리를 튼 사회에서 질병 확산에 대한 공포는 그 파장을 더욱 증폭시켰다. 불신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이는 곧 국가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많은 전문가들이 신뢰를 사회적 자본이라 꼽는 이유다. 아시아경제신문은 창간 27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재도약의 조건으로 '신뢰 생태계(Trust Ecosystem)' 조성을 제안하며 4회에 걸쳐 시리즈를 싣는다.

전월세 계약 후에 확정일자를 받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필수적인 절차로 자리 잡았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경매나 공매에 대비해 대항력을 갖추려는 최소한의 안전조치로 간주되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 불신 풍조가 만연해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에선 경찰이 음주운전을 적발할 때 의심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일직선을 똑바로 걸을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음주측정기도 못 믿어 혈액검사까지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보여준다.
◆사회 전반에 퍼진 불신의 늪= 한 예지만 확정일자 비용이나 음주 혈액검사 비용은 개별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긴 기간 전체적으로 보면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누적된다.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상생활에서 사회 구성원 간에 또는 국가와 국민 간에 저신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이들을 꼽았다. 김 교수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바닥권에 있는 대표적 저신뢰 국가이고 저신뢰에서 오는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며 "확정일자나 음주 혈액검사는 전체로 보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드는데 이는 모두 못 믿는 사회에서 오는 비용"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각 주체별로 불신의 골이 깊다. 정부와 국민은 물론 기업과 소비자,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에도 신뢰가 높지 않다. 이런 불신은 고스란히 갈등으로 이어진다. 올해만 보더라도 연초에 연말정산 문제를 시작으로 최근 국회와 정부 간의 시행령 수정 권한 논쟁에 이어 메르스 사태까지 불신이 갈등으로 이어진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김 교수는 "급속한 경제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과정보다 목적을 우선시하는 풍토가 저신뢰 사회를 낳았다는 측면에서 저신뢰는 시대적 부작용의 산물"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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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불신 풍조는 여러 조사에서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가치조사(WVS)가 지난 1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10~2014년 한국인들의 상호신뢰지수는 조사 대상 59개국 중 23위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 국민 중 26.5%만이 그렇다고 답한 것이다.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더 컸다. 같은 조사에서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를 묻는 질문에 한국은 19%만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해 32위였다.

또 글로벌 홍보기업 에델만이 주요 27개국 정부와 기업, 언론, 비정부기구(NGO)의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기업 신뢰도가 지난해 39%에서 올해는 36%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한국은 지난해 45%에서 올해 33%로 추락해 조사 대상 27개국 가운데 멕시코와 공동으로 바닥권인 20위에 그쳤다.

이 같은 불신은 경제활동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최근 글로벌 정보분석기업인 닐슨이 실시한 올 1분기 세계 소비자신뢰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60개국 중 59위로 2분기 연속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상황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전망이 그만큼 비관적이라는 얘기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 국가경쟁력 지렛대= "신뢰는 함께 일하고 함께 혜택받는 상호 공통의 목적을 인정하는 것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1996년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를 사회적 포용과 신뢰로 보완하려는 새로운 시장경제 체제의 패러다임을 내세우며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가 노동과 자본 등 전통적 생산요소가 동일하게 투입돼도 나라별로 성과가 다른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신뢰'를 '사회적 자본'으로 사용했다. 이후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신뢰를 곧 사회적 자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인적, 물적 자본처럼 사회적 자본이 풍부해야 생산성이 높아지는데 이 사회적 자본의 토대가 바로 신뢰라고 평가한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불신의 깊이만큼 사회적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회 구성원 간의 불신은 정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탐색 비용을 높이고 사회에 만연한 불신을 불식시키는 데도 막대한 관리 비용이 든다. 정부 입장에서도 신뢰 기반의 효율적인 거버넌스 구축에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게 됨은 물론이다.

전문가들은 신뢰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가늠자라고 말한다. '트러스트'라는 저서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선진국과 다른 나라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바로 신뢰로 대변되는 사회적 자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가신뢰지수와 경제성장률은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퍼트넘 교수의 이론을 계량화한 경제학자 스테판 낵과 필립 키퍼는 국가신뢰지수가 10% 오르면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오른다는 결론을 냈다. 사회 전반에 '신뢰 생태계'가 뿌리 내린다면 사회안정은 물론 경제발전의 든든한 지렛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상원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는 "국가경쟁력지수는 정부와 사회 각 부분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느냐를 말하는데 불신이 팽배하면 사회의 효율적인 시스템 작동을 저해한다"며 "한 사회에서 기본적인 규칙이나 원칙이 지켜질 때 경제적인 시장 원리가 잘 작동된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이 학자들의 의견을 따르면 대한민국 경제에 가장 큰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사회 전반에 퍼진 '불신'이라 할 수 있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자는 누구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는 제롬 블래트너의 역설적인 명언을 상기할 때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는 사회적 비용을 높이고 신뢰하는 사회는 그만큼 국가성장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불신과 반목이 교차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트러스트 코리아(Trust KOREA)'가 필요한 이유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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