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봄날…'향수'가 그려지는 옥천 물길여행

너른 들과 굽어 흐르는 물길이 있는 '향수' 속의 고향의 모습을 보려면 청성면 보청천을 따라가는 길이 좋다. 부드럽고 푸근하며 그 언저리의 마을들은 고향의 정취로 가득하다. 보청천 독산 정상에는 '상춘정(常春亭)'이 세워져 있다.

너른 들과 굽어 흐르는 물길이 있는 '향수' 속의 고향의 모습을 보려면 청성면 보청천을 따라가는 길이 좋다. 부드럽고 푸근하며 그 언저리의 마을들은 고향의 정취로 가득하다. 보청천 독산 정상에는 '상춘정(常春亭)'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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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봄꽃들이 눈꽃 흩뿌리며 잦아들고 있습니다. 산과 들은 이제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번져가는 연초록 새순들 세상입니다. 무르익은 봄날 충북 옥천으로 갑니다. 금강, 대청호, 보청천 등 물길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정지용의 시 '향수'가 입안에서 흥얼대는 그런 길입니다. 옥천은 정지용이 태어나 자란 곳이지요. 보청천을 따라가는 길은 '향수'에서 그려낸 고향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들녘에는 얼룩빼기 황소가 금방이라도 나와 울음을 울 것 같습니다. 여기다가 대청호를 휘감아 도는 부소담악은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불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옥천의 핫 명소로 떠오른 둔주봉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유장한 금강의 물길이 휘돌아가며 반전된 한반도 모양의 땅을 빚어 놓았으니 말입니다. 이 봄이 가기 전 꿈결 같은 고향 생각이 절로 나는 향수여행에 나서봅니다.
◇부소담악-대청호 드는 물길에 터 잡은 소금강
옥천은 금강이 구절양장처럼 흐르는 고장이다. 금강의 지류 소옥천이 대청호로 흘러드는 군북면 추소리에 부소담악이 자리하고 있다. 부소담악의 아름다움은 조선시대 문신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소금강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빼어나다.
고리산 성인봉 중턱에서 바라본 부소담악이 봄꽃과 연초록 새순에 잠겨 자태가 도드라진다.

고리산 성인봉 중턱에서 바라본 부소담악이 봄꽃과 연초록 새순에 잠겨 자태가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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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소리마을 서낭재에서 소옥천을 따라 부소담악 위에 세워진 추소정, 부소정까지 갈 수 있다. 이 길은 대청호 500리길의 일부 구간이기도 하다. 수면 위로 솟은 능선 아래는 원래 경사 완만한 밭이었는데 물이 차면서 능선 끝부분만 남았다. 너비 20m, 높이 40~90m의 능선이 물길 복판으로 약 700m나 뻗어있다. 사계절 언제든 풍광이 장쾌하지만 봄날의 화려하기가 으뜸이다.


추소리에서 부소담악 능선길을 따라 걷는다. 절반은 폭신한 흙길이고 절반은 나무 데크길이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연초록 새순으로 우거져가는 눈부신 길이 펼쳐진다. 산벚꽃, 진달래 꽃빛의 막바지 여운이 가슴에 와 요동친다. 가끔씩 발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야생화들의 자태도 즐길 만 하다. 미동 없는 수면을 가르는 물새들의 교태와 멋들어진 봄꽃의 조화가 아름답다. 봄날이 그려놓은 수채화는 이렇듯 곱디곱다.

추소정에 올라 물길 너머 한갓진 시골마을도 음미하고 아늑한 솔숲에 에워싸인 부소정에 앉아 청명한 바람도 맞는다.


부소담악은 안에 들어서 보면 정겹고,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면 장쾌하다. 추소리 황룡사 옆에서 환산(고리산)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이 산에 오르면 부소담악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부소담악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리산 숲길의 봄빛 풍경

부소담악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고리산 숲길의 봄빛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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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산은 '국내 100대 명산'에 드는 전망 좋은 산으로 나제동맹이 깨진 뒤 백제ㆍ신라군이 격전을 치르던 곳이었다.

산행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부소담악을 내려보기 위해선 굳이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황룡사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 20여분 오르면 나오는 성인봉 중턱이 포인트다. 올라서면 그 장쾌함에 눈이 호강한다. 준봉 사이를 'S'자로 휘어지며 흐르는 물길이나 이 가운데로 뻗어있는 능선이 거대한 용의 움직임처럼 느릿하게 꿈틀댄다.


동쪽으로는 소옥천이 감아 도는 추소리마을과 그 너머로 첩첩이 쌓인 옥천의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다. 북쪽으론 멀리 대청호가 눈에 잡힌다. 소옥천 물길을 따라 봄꽃과 연초록 새순에 잠긴 부소담악의 자태가 도드라진다.


◇구읍과 보청천-정지용의 시 '향수'가 그려지는 풍경
옥천에 가면 정지용이 떠오른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로 시작되는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익숙한 '향수'의 시인, 그가 1902년 옥천에서 났다.

옥천 구읍 상점들은 너나없이 간판이 시적이고 담벼락에도 시 한구절은 적혀있다.

옥천 구읍 상점들은 너나없이 간판이 시적이고 담벼락에도 시 한구절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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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은 일본 유학 중이던 22세에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향수'를 썼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집을 나간 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고 확실히 밝혀진 것은 지금도 없다.


옥천읍(구읍)에 그의 생가가 복원돼 있다. 그 옆에 문학관도 있다. 구읍 사람들은 정지용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 이유일까. 구읍 상점들은 너나없이 간판이 시적이다. 간판만 보고 다닌대도 봄날의 서정에 흠뻑 빠질 듯하다.


이를테면 정지뜰식당 간판에는 '불 피어오르듯 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고파라'로 시작하는 정지용의 시 '저녁햇살'의 한 구절을 걸었다.


하지만 구읍에서는 딱히 '향수'를 떠올리게 할 그런 풍경을 보기 힘들다. 너른 들과 굽어 흐르는 물길이 있는 '향수' 속의 고향의 모습을 보려면 보청천을 따라가는 길이 좋다. 보청천이란 이름은 충북 보은의 속리산 자락에서 발원해 옥천군 청산면으로 흘러내린다 해서 보은에서 '보'자를, 청산에서 '청'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보청천의 길은 부드럽고 푸근하며 그 언저리의 마을들은 고향의 정취로 가득하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보청천의 새벽

물안개 피어오르는 보청천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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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피는 보청천의 새벽

물안개 피는 보청천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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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천을 가장 아름답게 지켜볼 수 있는 곳은 청성면이다. 산계리보가 물을 가둬 제법 큰 강처럼 몸을 불린 보청천에 독산이 솟아 있다. 높이 20m에 불과함에도 '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그 자태의 범상함 때문이다. 정상에는 정자 '상춘정(常春亭)'이 세워져 있다. 정자에 얹은 이름이 '언제나 봄 풍경'이니 요즘 같은 봄 여행에 운치를 더해 준다.


청성면에 이웃한 청산면은 동요 작곡가 정순철 선생의 고향이다. 방정환 선생과 함께 색동회를 창립한 분으로 '졸업식 노래' '짝짜꿍' 등 유명한 동요와 노래를 작곡했다. 동네 곳곳에서 정순철 선생 캐릭터를 담은 간판과 벽화가 눈에 띈다.
◇둔주봉-반전된 한반도 지형, 금강의 물길이 만들었네
유장하게 1000리를 흘러가는 금강은 대부분의 구간에서 옛 강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금강이 충북 영동을 지나 옥천 땅을 지나면서 아름다운 강변의 정취를 펼쳐보인다. 수면은 햇살에 반짝이고 여울에는 잔돌을 타넘는 물소리로 가득하다.

이맘때는 어딜 가도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는 청량한 봄빛을 만날 수 있다.

이맘때는 어딜 가도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는 청량한 봄빛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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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옥천에서도 최근 가장 잘 나가는 명소가 있다. 바로 안남면에 있는 둔주봉이다. 해발 384m에 불과한 산이지만 올라서 보는 풍광은 대박이다. 산 중턱에 오르면 금강의 물줄기가 빚어낸 한반도 지형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둔주봉에 오르는 까닭은 오로지 하나, 이 경치를 만나기 위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둔주봉 길은 봄날 가벼운 산행길로 그만이다. 안남초등학교 옆길이 들머리다.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 포장길이 1.8㎞가량 이어진다. 본격적인 산행은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는 점촌고개부터다. 여기서 둔주봉 전망대까지는 800m. 거리는 길지 않지만 제법 경사가 가파른 구간이 있다. 그나마 부드러운 흙길을 이루고 있는 게 다행이다. 길 양옆에는 리기다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청량감을 더한다.


전망대에서 서면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강원도 영월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이 실제 지도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면 둔주봉에서 보는 한반도 지형은 좌우가 바뀌어 있다. 부산이 왼쪽에, 목포가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금강의 S자 물길이 한반도 지형을 휘감고 주변 산세가 강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일품이다. 내친 김에 300m쯤 더 올라 둔주봉의 정상까지 가도 좋다.

둔주봉 전망대에서 반전된 한반도 지형을 바라보는 여행객들.

둔주봉 전망대에서 반전된 한반도 지형을 바라보는 여행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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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넘어 피실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40여분 산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금강변이다. 이 강변길을 따라 먼지 풀풀 날리는 흙길. 잘 다져진 길은 순하디순한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그 길 위에 서면 아름다운 강변 풍경에 취해 속도를 더 내고픈 생각이 달아나게 된다.


옥천=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옥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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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메모
▲가는길=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옥천나들목을 나서면 바로 중심가가 나오고 그 옆에 구읍이 있다. 부소담악은 판암IC에서 옥천 방면 옥천로를 따라 9㎞ 정도 가다 이백 삼거리에서 이평리, 추소리 방면으로 좌회전 5㎞ 정도 가면 된다. 보청천 상춘정은 내비게이션에 청성면사무소를 찍고 가면 찾기 쉽다.


▲먹거리=금강을 끼고 있어 민물고기 요리가 발달했다. 피라미를 바삭하게 튀겨낸 도리뱅뱅이(사진)와 민물고기를 뼈째 푹 고아내 고추장을 풀고 각종 야채를 넣은 뒤 국수를 말아먹는 생선국수가 유명하다. 구읍의 대박집(043-733-5788)과 청산면 선광집(043-732-8404) 등이 맛나다고 소문났다. 구읍 할매묵집(043-732-1853)은 40년 내력의 식당으로 잘게 채 썬 묵에 갖은 양념을 넣어 내놓고 멸치 육수와 동치미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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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군북면 석호리의 청풍정은 구한말 개혁파 김옥균과 기녀 명월의 전설 같은 사랑이야기가 흐르는 곳이다. 이지당은 문신이자 유학자인 중봉 조헌 선생이 지방 영재를 모아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둔주봉 부근엔 조헌 선생 묘소와 신도비 등 유적이 있다. 구읍엔 육영수 생가도 있다. 이 밖에도 장계관광지, 용암사, 옥천성당 등이 볼거리다.

대청호오백리길의 일부인 부소담악 가는길.

대청호오백리길의 일부인 부소담악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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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구읍에 있는 정지용생가

옥천 구읍에 있는 정지용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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