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다. 자본주의 시장에선 돈이 권력을 만든다. 돈을 쥔 이는 배분을 하며 자연스레 갑(甲)이 되고, 돈을 받는 이는 손바닥을 내밀며 을(乙)이 된다. 매년 행정고시 합격자 중 상위권이 줄줄이 기획재정부를 희망하는 것도 그래서다. 돈줄을 움켜쥐고 있는 곳이 정점에 서는 게 진리다.
한 증권사 대표는 "여의도에는 국민연금과 산업은행이라는 갑이 있고,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무조건 국민연금"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국민연금에 뚫린 돈 구멍이 많다는 얘기다. 어떻게 뚫느냐에 따라 흘러나오는 돈의 양이 달라지니 금융투자 회사 법인영업 담당자들은 죽기살기로 국민연금에 매달린다. "국민연금 거래사 평가등급이 강등되면 영업본부장 목이 달아난다"는 말이 괜한 엄포가 아니다.
감사원은 국민연금이 거래사 등급을 '잘못' 산정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기금본부의 잘못이 무지에서 나온 것인지 고의적 실수인지는 따져 볼 일이다.
국민연금의 거래사 자금 배정이 문제가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흑역사로 불리는 2011년에는 대놓고 거래증권사 평가점수를 조작한 점이 들통나 여의도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개인적 친분이 있어서' '내게 인사를 안 와서' 등등 조작 이유도 다양했다. 등급이 떨어지면 그만큼 배정액이 줄어드니 국민연금 기금본부로선 가장 효과적인 칼날을 휘두른 셈이다. 당시 평가점수를 조작한 이들은 직후 거래증권사와 유유히 유흥업소를 출입하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12년 전 감사원은 국민연금을 감사한 뒤 채권 매매 수수료를 과다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채권 액면 1만원당 1원 수수료를 지급하는데 특정 회사에게는 1만원당 8원을 지급해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국민연금을 향한 영업 역사도 10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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