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모르고, 남의 말을 자주 오해하거나 곡해하고, 남의 말의 뉘앙스를 놓치거나 남의 말이 지닌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 쏟아내는 말은 일방통행일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내 말만 듣기를 강요하는 말하기가, 우리 사회에 쏟아내놓은 소음은 얼마나 많은가. 대화가 아니라 우기기와 강요와 멱살잡이가 기승을 부리는 까닭은, 듣는 능력이 치명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귀가 섬세해야 입이 섬세해지며, 귀가 밝아야 말 또한 밝아진다.
남의 글을 제대로 독해할 수 있느냐, 많은 글 혹은 길거나 깊은 글을 읽어낼 수 있느냐는 문제는, 우리 사회에 점점 확산되고 있는 '디지털 문맹사회'의 징후를 드러내주기도 한다.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고 글을 읽어내는 것은 아니며, 책을 읽었다고 반드시 책을 해독해내거나 음미했다고 말할 수 없다. 글은 글자 이상이며, 책읽기는 책읽기 그 이상이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채로, 글을 제대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느 학자는, 문명은 '해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에 있었다고 얘기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질문하는 힘'에 달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선진국은 인류의 문제의 변경에서 그 밖을 향해 질문하고 있는 나라이며, 후진국은 선진국이 질문을 통해 닦아놓은 대답의 길을 그대로 따라오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세상의 창의는 모두 질문이 뛰쳐나간 그곳에서 돋아난 것이며 그것이 문명의 궤적이며 인류역사의 길이었다.
듣는 것이 실력이며 잘 듣는 것이 능력이며 제대로 듣는 것이 내공이다. 읽는 것이 실력이며 잘 읽는 것이 능력이며 제대로 읽는 것이 내공이다. 평생 동안 당신이 내놓는 질문 중에서, 인류를 움직일 위대한 기폭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질문을 위하여, 듣고 읽는 힘을 키우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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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