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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짜짬딜레마(245)

최종수정 2020.02.12 10:19 기사입력 2014.12.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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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음식점에 가면 나는 영원한 딜레마 하나에 여지없이 빠지고 만다. 이른바 ‘짜짬 딜레마’다. 앞에 앉은 친구는 짬뽕을 시키고 난 짜장면을 시켰는데 음식이 나오는 걸 보니 짬뽕이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이다. 이상한 것이 내가 짬뽕이고 녀석이 짜장일 때는 짜장면이 더 맛있어 보인다.

짬뽕이나 짜장 1인분이 가격도 겸손(?)하지만 양도 무척이나 겸손해서 친구의 그릇에 젓가락을 휘둘러 몇 안되는 면발을 끌어오는 일은 만행에 가깝기에 그저 녀석의 그릇을 흘깃거리며 어쩐지 비교적 맛없는 내 것을 먹어야하기 일쑤다.
앞자리 친구가 짬뽕을 맛있게 먹고 있는 풍경을 보노라면 참으로 군침이 돈다. 새우 구운 빛깔과 비슷한 불그스름한 국물은 얼큰해서 목구멍이 시원할 거 같고 그 국물 속에 쫄깃쫄깃한 자태로 다소곳이 내려앉은 면발과 그 면발 사이로 보이는 빨간 무, 그리고 갖은 야채들의 군무(群舞)는 입과 혀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고스란히 복원해낸다. 뿐만인가. 송송송 썰어져 국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오징어나 문어 다리 따위의 해물들은 왜 그리도 맛있어 보이는가.

중국 음식 특유의 고추기름 같은 것이 둥둥둥 떠있는 것도 멋져보이고 그 붉은 수면 위에서 모락모락 오르는 김, 거기서 은은히 올라오는 후끈한 기운을 느끼노라면, 천국의 식단에는 반드시 저런 얼큰한 무엇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게 된다. 녀석. 저런 짬뽕을 선택하다니 복도 많군. 질투의 눈으로 후루룩 쩝쩝거리는 입을 본다. 정말 웃기는 짬뽕 같은 마음이다.

한데 녀석이 짜장을 시켰을 때는 전혀 다른 마음이다. 우선 흑갈색의 신비한 짜장 양념에서 풍겨나오는 형언할 수 없이 강렬한 유혹이 사람을 기죽인다.
검은 설렘이랄까, 젓가락이 버무려주기를 기다리는 면발들이 똬리튼 모양새는 첫날밤 신방에 들어앉은 신부처럼 순결하고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걸쭉한 국물을 면발과 섞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위액과 침샘이 충분히 그 뚜껑을 열고 이 귀한 손님을 기다린다.

짜장면에는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한 무엇이 있다. 거기에는 인간 식욕의 빈틈을 파고드는 검은 국물의 공격적인 향미가 도사린다. 중국 본토에는 아예 없다는 둥 있어도 생판 다르다는 둥 말도 많은 그 국물맛이다.

이런 가공스런 무기를 개발한 중국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남의 나라 사람들의 위장 속을 어찌 그리 꿰뚫을 수 있단 말인가. 한국사람 치고 이 짜장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이가 몇이나 되랴?

위대한 짜장을 척척 버무리는 친구의 젓가락질은 당당하고도 도도하다. 둥둥 떠다니는 오징어다리를 건지고 있는 나는 왜 이리 초라한가.

이런 불공평이 어디 있는가. 정말 웃기는 짜장면이다.

이런 부러움과 뉘우침을 좀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애초에 잘 선택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고민고민 끝에 난산한 결정의 결과도 여전히 후회스럽긴 마찬가지다. 짜장, 하고보면 맛있는 건 짬뽕이고, 짬뽕을 고르고 보면 그 반대이다.

짜짬 딜레마는 어찌 보면 우리 살이의 모양새와 닮아있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난다. 스스로가 선택한 것에 대한 불만과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것에 대한 아쉬움이 공존하는, 마음의 허황한 반성 같은 것이 이 딜레마 속에 숨어있다.

사실은 이미 선택한 것이 최상이었고 다시 살아도 그런 선택 이상이 없을지 모르는데도 이 길이 아니었으면 뭔가 나았을 것이라는 엉터리 확신으로 늘 뒤돌아보게 하는 마음의 동영상을 이 중국집 풍경은 리얼하게 보여준다.

어떤 날은 더 좋은 학교를 못 나와서 슬프고 어떤 날은 미국 같은 부자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해 언짢고 어떤 날은 더 좋은 직장을 못 가져서 답답하고 어떤 날은 더 넓은 아파트, 더 괜찮은 친구, 더 삼삼한 아내를 못 가져서 서럽다.

어떤 날은 내 재능이 한심하고 어떤 날은 내 얼굴이 마뜩찮고 어떤 날은 내 키가 180센티가 되지 못해서 약오른다. 어떤 날은 내가 의사, 변호사가 아니어서 한숨 나오고 어떤 날은 내가 잘생긴 탤런트가 아니어서 불만이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나는 왜 만날 웃기는 짬뽕, 웃기는 짜장면인가.

이런 딜레마를 파악한 어떤 중국집은 아예 ‘짬짜면’이란 걸 메뉴로 개발해놨다. 욕망과 후회를 모두 줄여 반반씩 담아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걸 먹어보니 희한하게도 짜장도 짬뽕도 모두 어정쩡해져서 생기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억울해하면서 먹어야만 탱탱하게 살아나는 맛이 있나 보다. 선택하지 못한 것을 바라보는 억울함이야말로, 현재의 삶을 맛있게 하는 에너지인 거야. 그래.

내 그릇에 담긴 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마음은 내 살이의 중요한 지혜가 아닐까. 내 그릇의 것이 잠깐 못나 보인다고 휘휘 못된 마음의 젓가락질을 해대기 시작하면 내 점심식사만 망칠 뿐이다. 단무지 하나를 천천히 베물면서 생각을 좀 해보라. 아니 양파껍질 위에 식초를 휘휘 뿌리면서 한번 생각을 해보라.

내 접시에 든 것이 진짜 맛있는 것이다. 저 녀석은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거야. 자, 한 젓가락 자신있게 말아올려 봐? 깨달음은 짬뽕 속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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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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