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 연대도 제일 앞서···18일 경매 출품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서울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에 자리한 '서촌'. 이곳은 요즘 경복궁 동쪽의 북촌과 삼청동, 인사동 못지않은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갤러리와 미술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더러 비교적 상업화가 덜 진행돼 동네의 골목길을 한적하게 걸어보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한옥과 빌라가 뒤섞인 골목길 구석구석 옛 문인과 화가들의 자취가 서려 있는 장소들을 만나볼 수 있어 특별함을 더한다. 특히 조선 중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 '(1676~1759년)은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 살면서 4계절의 풍광과 정취를 그려낸 인물이다. 정선의 그림 속 옛 서촌의 모습을 더듬어 보는 것도 서촌을 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한 방법이다. 마침 겸재가 살았던 서촌의 집 근처를 그린 그림이 나와 미술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촌의 풍성한 문화의 숨결은 그 후 '후배'들에 의해서 일부 맥이 이어진다. 수성동 계곡 인근 인왕산자락을 거닐며 '서시', '별헤는 밤' 등 명시를 남긴 윤동주의 하숙집터, 박노수 화백이 살았던 옥인동의 가옥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 이중섭 화백이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6개월 짧은 기간 동안 기거하던 누상동의 골목길 안 가옥 등이 그 자취들이다. 통인동엔 천재시인 이상이 어릴적 부터 살았던 집 자리에 시인을 기리는 사랑방 건물도 기왓장을 간직한 채로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서촌 곳곳에 남아 있는 정선의 흔적을 밟아보는 길은 그가 태어난 곳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청운동 경복고는 그가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다. 이곳 교정 잔디밭에는 겸재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인 '독서여가(讀書餘暇)'가 새겨진 표석이 세워져 있다. 50대 중반이었던 시절 정선은 이곳 집을 작은 아들에게 물려주고 현재 효자동 사무소가 있는 옥인동 자수궁터 부근으로 추정되는 인왕산 동쪽 기슭으로 이사했다. 당호를 '인곡정사'로 붙인 이 집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다. 여름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 집과 함께 그린 그림이 바로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인 '인곡유거'(仁谷幽居)다.
'안전소견'은 잎 떨어진 나무와 마당의 국화를 통해 계절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추위에 국화가 시들까 봐 국화와 괴석 주변에 바람막이를 설치한 모습에서 국화와 괴석을 대하는 겸재의 태도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작품이 여름날의 풍경이라면, 이 작품은 가을날 밤 풍경을 담고 있다. 문헌상에서 겸재가 인곡정사로 이사한 시기를 살펴보면, 조영석이 지은 '관아재고(觀我齋稿)'에서 영조7년(1731) 2월 관아재(조영석)가 먼저 이사한 뒤 정선이 수십보 떨어진 곳에 이사 왔다고 전해진다. 겸재는 이곳으로 이사 오고 2년 뒤인 1733년 8월 15일 현재 포항지역인 청하의 현감으로 제수된 것으로 적혀 있다. 이번에 경매를 통해 등장한 '안전소견'은 겸재가 청하현감으로 가기 바로 직전 해 가을에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다. 겸재는 청하로 간 이후 모친상을 당해 2년 만에 다시 인곡정사로 돌아온다. 삼년상을 치르는 등 5년 이상 벼슬없이 지낸 기간이나 몇 차례 관직을 다시 받았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동안 관직활동을 하지 않은 시기에 그는 이곳에 머물렀다.
화제(畵題)를 통해 제작 연대를 비교해 보면 '안전소견'은 지금까지 공개된 비슷한 도상의 '인곡유거'(1739~40년)나 '인곡정사(1746년)'보다 이른 시기에 그려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인곡정사'는 지난 2012년 경매에 나와 삼성문화재단이 34억원에 사들인 '퇴우이선생진적첩'에 들어 있는 그림이다. 1746년도 제작된 이 서화첩은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친필저술인 '회암서절요서(晦菴書節要序)'와 우암 송시열의 발문 두 편, 겸재 정선의 네 폭의 기록화 등을 포함해 총 16면으로 구성돼 있다.
'안전소견'은 오는 18일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추정가 7000만~1억2000만원 선에 마이아트옥션 12월 경매에 붙여진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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