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가해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다큐멘터리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당신이 저지른 학살(Killing)을 재연(Act)해보지 않겠습니까?"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주인공은 1960년대 인도네시아 대학살의 가해자들이다. 당시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이기로 악명높았던 암살단의 주범 중 한 명인 '안와르 콩고'는 오펜하이머 감독의 영화 촬영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지금의 부귀영화와 명성을 안겨다준 그 때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 오히려 흥분한 듯한 모습이다. 학살의 가해자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하는 과정을 담은 이 문제적 다큐는 세계 영화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전세계 70여개의 국제영화제에서 앞다투어 이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됐다. '공산당 박멸'이라는 구호에 맞춰서 당원들은 물론이고 학생, 교사, 지식인들이 무자비로 살해당했다. 무고한 시민들도 손에 잡히는 대로 죽였으며, 중국인들도 희생자 명단에 포함됐다. 당시만 해도 PKI가 합법적인 정당이었기 때문에 수하르토는 불법 우익단체들과 청년회에게 몰래 무기를 쥐어주며 학살을 지시했다. 우익세력 '프레만'과 '판차실라 청년단'이 국가적 살인을 거들었다. 숙청은 이듬해인 1966년까지 이어졌고, 희생자만 최소 100만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가장 큰 비극은 당시 대학살에 동참했던 이들이 지금까지도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우익 단체의 일원이었던 안와르는 영화를 위해 살인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할리우드 영화광인 그는 자신의 이야기도 존 웨인이 나오는 서부극처럼 만들도록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50여년 전 살인의 공간으로 사용했던 한 건물의 옥상을 다시 찾은 안와르는 "피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목에 전선줄을 묶어서 사람을 죽였다"고 설명하며 그 동작을 재연한다.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끼고 학살의 공간에서 안와르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그와 동료들은 "우리가 제일 잔인했다"며 자랑하고, "자식들이 보복할 수 없어요. 왜냐고? 우리가 다 없앴으니까"라는 말을 툭툭 내뱉는다. 이들의 행동은 관객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전쟁범죄는 승자들이 규정한다"는 한 가해자의 논리에 쉽게 반문할 수도 없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처음에는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와 현지 우익단체들의 외압과 방해로 희생자들을 취재하기가 어려워졌다. 증언을 하기로 했던 희생자가 촬영을 거부하면서 감독에게 말했다. "우리는 말하기 어려우니 가해자들을 한번 찍어봐라."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이 다큐멘터리다. 가해자들이 승리한 세상을 담담하게 담아내면서 오펜하이머 감독은 말한다. "이러한 학살의 역사를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힘든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의 삶 또한 누군가의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내 오펜하이머 감독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속편 '침묵의 시선'을 완성했고, 이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20일 개봉.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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