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같이 방을 쓴 해는 둘 모두 박사논문 자격시험을 치르기 직전이었다. 침대에 누워 자격시험을 앞둔 긴장과 걱정을 한참 얘기하다 둘 다 '이 시험만 끝나봐라, 그 때는 정말 시험 걱정 없이 제대로 된 논문 연구를 해야지'하며 잠들었다. 둘 다 시험을 통과하고 논문 연구를 거의 마치고 졸업할 무렵이 되었다. 다시 학회에서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는 마침 둘 다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같이 침대에 누워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사회과학분야에서 테뉴어 트랙 교수직 구하는 온갖 어려움에 대해 한창 떠들다가 둘 다 '직장만 구해봐라, 그 때는 구직 걱정 없이 제대로 된 연구를 해야지' 하면서 잠들었다.
그러다 나는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예전처럼 매년 그 학회에 가지 못해 그 룸메이트 교수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올해 간만에 그 학회에 가게 되었다. 그 사이 그 교수는 제법 유명한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 엔지니어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휴직한 후 막 복귀한 상태였다. 둘 다 올해 테뉴어 심사를 앞두고 있어서 이번에는 한국과 미국의 테뉴어 제도에 대한 온갖 성토(?)와 심사 걱정을 하다가 둘 다 '테뉴어만 받아봐라, 그 때는 쥐어짜는 논문 수가 아니고 제대로 된 연구를 해서 정말 훌륭한 논문을 써야지' 하면서 잠들었다.
뒤돌아보니 시험, 심사, 구직, 승진 등 여러 고비 때마다 얼마나 미룬 게 많았으면 그것만 지나봐라 하며 새벽까지 수다를 떨었나 싶다.(룸메이트 교수는 결혼을 한참 미루다가 세 번째 고비가 넘어서 한 셈이니)늘 그 고비만 넘기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 고비를 넘기면 더 높은 고비가 있었다. 그래서 요새는 고비만 넘겨 봐라가 아니라 '고비를 넘기면 하겠다'는 일을 그냥 지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제대로 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넘겨온 고비였으니 지금 그런 연구를 하면 되는 것이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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