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대학에 재직하는 나의 경험은 한마디로 과잉사회다. 이공계는 인문사회계보다 훨씬 연구개발 과제가 많고 규모도 크기 때문에 이래저래 일이 많다. 회의도 많고, 써낼 보고서도 많고, 보여줘야 할 시제품이나 시연도 많고, 맞춰야 할 마감일도 많다. 이 많은 일과 일정을 문제없이 소화하기 위해서는 일단 '카페인' 과잉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 일이 많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만.)
이렇게 연구개발 규모가 느는 데에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 (Albert Hirschman)의 표현을 빌면 '과도한 약속 (over-promising)' 덕택(탓?)이다. 연구과제 제안서를 한번 써보면 단번에 알아차리겠지만, 한마디로 1억원짜리 과제를 수주하려면 적어도 2억~3억원 정도 규모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야 얻을 수 있으니 연구의 양과 기대 성과를 부풀려 적게 되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과잉사회의 징후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뭐니뭐니 해도 '스마트' 과잉이 단연 돋보인다.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스마트워크, 스마트홈, 스마트러닝 등등. 스마트폰 중독 증가율이 인터넷 중독을 앞지른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별의별 것이 스마트해지면서 더 바빠지고 덜 여유로워진 일상이 스마트기기의 편리함을 상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스마트폰 없이 사는 나같은 사람도 스마트폰 사용자들에 둘러싸여 덩달아 바쁜 판국에,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정신없이 바쁠 것인가.
대학과 대학원 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맘쯤에는 학력 과잉, 능력 과잉, 한마디로 '스펙' 과잉을 실감하게 된다. 최근에 학생들 추천서를 쓰다가 문득 이렇게 학점, 봉사, 기타 과외 활동이 훌륭한 학생들이 떨어지기라도 하나 싶었는데 그중 한 명은 작년에 희망하던 대학원 진학에 실패한 학생이었다.
과잉사회가 문제인 것은 사실 과잉이라는 현상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과잉이 아닌 것은 모두 결핍으로 치환하는 고루함 때문인 것 같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불편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스펙이 좀 떨어지면 신의 직장은 아니라도 적당한 곳에서 일할 수 있고, 의사라는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자기 건강을 잘 챙길 수 있다면….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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