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년이 되었을 때 선친은 서울에 올라 와 한의원을 차리셨다. 워낙 실력이 좋았고 가전의 비방이 뛰어나 주변에 허리병을 잘 고치는 명의로 소문이 자자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으니 바쁘고 귀찮기도 할 법하지만 선친께서는 길을 가다가도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셨다.
2014년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해이다. 그동안 네트워크 형태로 운영되어 온 전국 15개 자생한방 병의원을 하나의 자생의료재단으로 통합했다. 의료진이 146명이나 되고, 650명의 임직원, 582개 병상이 하나의 공익의료재단으로 편입되었다. 재단의 자산 규모만 총 653억원의 국내 최대 규모의 한방 공익재단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방공익 의료재단의 출범은 사회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베풀겠다는 약속이다. 돈이 있건 없건 치료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베풀고, 잊혀져가는 한방 의료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해 과학적으로 밝히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가 실천하셨던 긍휼지심을 이 시대에 전하는 나만의 방법이자 치료 본연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나눔의 실천이다.
또 한편으로는 지금까지는 등한시 해왔던 한의학의 치료효과를 과학적으로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약이 어떠한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침 치료는 어떠한 원리로 질병을 치료하는지를 연구해 근거중심인 양방의학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의학자들이 보고, 자신들의 치료와 연구에 활용하는 SCI급 학술지에 한의학의 효능 연구를 계속해서 발표하다 보면 언젠가 한방치료가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나는 자생의료재단을 설립하기 위해 그동안 모아두었던 대부분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혹자는 653억원이나 되는 재산을 어떻게 그리도 쉽게 재단에 출연할 수 있었느냐고 물음을 던진다. 사실 그 물음은 내가 나에게 수백 번도 더 해본 질문이다. 하지만 선친이 알려주신 '긍휼지심'을 '나눔경영'이라는 방법으로 자생의 전 직원과 함께 실천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눠야 한다는 것이 답이었다.
'숙려단행(熟慮斷行)' 이라는 말이 있다. 충분히 생각 한 후 과감하게 실행한다는 뜻이다. 행동하기 전에는 심사숙고하고 결심이 섰다면 망설이지 말고 실행하는 실천철학이 내 인생의 신념이었다. 나눔은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허약해지면 스스로 힘을 찾을 때까지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나눔이란 허약해진 사회가 자생력을 기를 수 있을 때까지 따뜻한 손길을 보태는 치료와 같은 행위이기에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은 더욱더 나눔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준식 자생의료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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