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 우리는 자연을 '보호'한다는 말이 참으로 가당찮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자연은 우리가 그로부터 배워야 하는 스승이라는 것을, 그 스승은 자신이 전하는 깊은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인간을 위해 때로는 현란한 색깔로 눈에 보여주고, 때로는 생생한 소리로써 귀로 듣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가령 남도의 산에 올랐을 때 단풍 사이로 온 몸을 씻어주는 듯 청량한 계곡의 물소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자연의 '육성'이었으니, 천지가 단 일각도 멈춤 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깨쳐주는 소리였다. 그래서 공자는 강가에 서서 우리도 이 강물처럼 주야로 쉬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고 했던 것이며, 남명 조식은 지리산에 열두 번 올라 계곡의 물소리로부터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이리라.
예전에 어떤 작가는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좋은 것은 커피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은 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좋은 것은 발아와 개화와 녹음과 결실과 단풍의 일생을 마치고 장렬히 산화하는, 그 생명의 장엄한 숙명과 신비가 자아내는 향내 때문일 것이라고.
사람의 일생 또한 그럴 것이며, 그 1년의 삶이 또한 그럴 것이다. 매 1년이 또한 출생과 성장과 수확과 휴식이 아니겠는가.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