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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콘트라베이스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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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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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콘트라베이스다. 더블베이스라고도 불린다.
나는 키가 2m 전후로 바이올린족(族) 가운데 기골이 가장 장대하다. 이 몸집에 걸맞게 오케스트라 악기 중 최저음을 낼 수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내가 하는 일은 대개 뒤편에 병풍처럼 서서 저음을 깔아주는 것이다.

나는 진가가 덜 알려진 악기다. 내 말을 전해 듣고 이 얘기를 전하는 백 아무개라는 작자도 얼마 전에야 내게 관심을 갖게 됐다.
나에 대해 들으면 코끼리를 연상하는 사람이 있다. 작곡가 생상이 '동물의 사육제'에서 왈츠를 추는 코끼리를 나한테 묘사하도록 한 이후 코끼리 이미지가 나를 따라다니게 됐다. 덩치나 평소 움직임이나, 코끼리 같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내가 소리만 요란한 타악기 팀파니보다도 덜 주목받는 상황은 참기 힘들다.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에서 어느 더블베이스 연주자는 팀파니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내 인지도와, 나와 비슷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그는 "팀파니가 한 번 울리면 음악당의 맨 뒷줄에 앉은 사람들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청중은 '아, 팀파니로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반면 콘트라베이스는 "다른 악기들의 소리에 휩싸여버리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나를 보고 '아, 콘트라베이스로구나'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비교한다.

그는 많은 작곡가에게 "베이스는 그것을 기본으로 삼고 그 위에 아름다운 교향곡을 작곡해 올려놓을 수 있는, 소리로 만든 양탄자에 불과했다"고 들려준다. 그러나 그도 설명했듯이 오케스트라는 내가 있어야만 구성된다. 오케스트라에 관악기나 북이 없는 경우는 있지만 내가 빠지는 법은 없다. 나는 음악의 기준이다. 건축물로 치면 기초에 해당한다. 내가 빠지면 연주음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 것이다.
쥐스킨트는 내게 고마운 작가다. 그가 내가 무대 전면에서 활약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도 썼다면 더 좋았을 텐데. 여러 작곡가가 18~19세기에 나를 위해 협주곡을 작곡했다. 여러 협주곡에서 나는 무거우면서도 가볍고 그윽하다가도 활달한, 폭넓은 표현력을 발휘한다. 나는 이탈리아 작곡가ㆍ지휘자 조반니 보테시니가 지은 협주곡 2번 B단조를 추천한다. 보테시니는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을 켜듯이 나를 연주했다. 가을의 서정에 물들게 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나는 요즘 다시 주목받는다. 되돌아온 화양연화의 시절이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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